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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희(楚姬) – ‘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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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8-12 16:30 댓글 0건 조회 4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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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여 년 전, 초당 본가와 외가를 오가는 설희의 길을 상상해 보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장걸음으로 울창하고 푸른 솔숲에 쌓인 본가를 막 벗어나면 잔잔한 경호가 거울처럼 다가선다. 강문과 저동을 잇는 섶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이어지는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경포 바다,  수평선 멀리로 부터 부시도록 흰 파도가 쉼 없이 포말지며 밀려오고, 갈매기들은 끼룩거리며 떼를 지어 날았을 것이다.

 

봄이면 사근진 해변을 따라 온갖 들풀과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한 차례 소낙비가 쏟아지는 사이 초당 뜨락에서 어머니와 마주하고 앉아 손톱에 봉선화 물도 들이고, 가을이 오면 외가 뜰에 빨갛게 잘 익은 감을 따 먹으며 또래 아이들과 정겹게 공기놀이도 했을 것이다. 겨울에는 마을 어귀 송림 사이를 뚫고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시심을 키웠을 것이며, 저녁이면 강문 바다 수평선에 펼쳐지는 핏빛보다 진한 노을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지척에 있는 경호에 잠긴 둥근 달은 또 어떠한가. 하루같이 시인이 아니라도 시가 절로 나오는 서정적 풍경에 젖어 보낸 유년이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빠 봉의 어깨너머로 천자문부터 시작해 하나씩 글을 익혀 마음껏 책을 읽고, 아버지 허엽 또한 성격이 개방적이고 일찍부터 생각이 깨어있었으니 초희로 하여금 서숙(書塾)의 오빠들 곁에서 글을 익히도록 허용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그녀는 행여라도 잊혀질까 강릉의 사람들은 물론 풍습과 풍경과 향기를 두 눈에 가슴에 기억속에 채곡 채곡 담았다. 하얀 화선지위에 구슬처럼 알알이 맺힌 고향의 서정(敍情), 그리고 그녀가 여섯 살때인 1569년 동생 균이 태어났다. 문헌상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허봉, 허난설헌, 허균 3남매 모두 사천 진리의 애일당에서 태어나 초당에서 자란 것으로 여겨진다.

 

문헌에는 초희는 여덟살 무렵인 1963년 아버지 허엽이 삼척부사에서 파직당한 뒤 다시 복직이 되어 한성으로 올라가게 되자 함께 올라갔다고 되어있다. 그러니 어찌 태어나고 자란 유년의 고향 강릉이 그립지 아니할까. 그녀는 죽지사(竹枝詞) 라는 제목의 시에 고향 강릉땅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적었다.

 

竹枝詞(죽지사)

 

家住江陵積石磯 (가주강릉적석기)

우리집은 강릉땅 돌 쌓은 강가에 있었지

 

門前流水浣羅衣 (문전유수완라의)

문 앞 흐르는 물에 비단옷 빨았네

 

朝來閑繫木蘭棹 (조래한계목란도)

아침이면 한가로이 목란배를 묶어 놓고

 

貪看鴛鴦相伴飛 (탐간원앙상반비)

짝지어 나는 원앙새 부럽게 바라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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