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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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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이 첫 대면을 한 대감 김이양은 높은 지위의 관리라기보다는 77세의 나이에도 고결한 인품에 백발과 홍안의 용모를 갖춘 학자의 풍모였다. 김이양은 부사와 동행하여 평양에 도착한 김부용을 한갓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마치 손녀가 외갓집에 다니러 온 것처럼 반겨 맞았다.
더구나 일개 시골 기생인 자신을 꼭 만나고 싶었던 시대의 문인으로 대해 주며 감동하게 했다. 부용을 부사와 함께 대동강과 능라도, 부벽루, 연광정, 모란봉, 을밀대를 소개하며 정자에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일행은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사를 멀리 하고 풍류에만 몰입해 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수일이 지나고 성천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 이별이라니, 부용에게는 태어나 처음 인간다운 대접, 품격을 갖춘 사람들을 만났던 터라 더욱 그 이별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 성천으로 돌아간다면 시골 한량들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리고 언젠가 유관준 같은 부사가 성천을 떠난다면 새로 올 부사의 수청이나 들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부용은 성천 시골로 돌아가지 않기로했다. 결심을 굳힌 부용은 김대감과의 이별을 하루 앞두고 용기를 내어 이곳에서 김이양대감을 모시게 해달라고 유관준부사에게 간청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출발 할때부터 마음속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유관준은 이 같은 부용의 사정을 김대감에게 아뢰고 허락을 구하니 대감도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감은 워낙 덕성이 깊고 인격자인 지라 부용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곁에서 먹을 갈거나 가벼운 시중이나 들도록 할 뿐, 저녁이면 마련해준 거처로 들라고만 했다. 처음 몇 달은 대감의 그러한 배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으나 그사이 부용의 몸이나 마음도 성숙해 가고 대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더해가면서 대감을 흠모하는 마음이 더해갔다.
대감의 잠자리를 펴놓고 물러날 때마다 그가 홀로 남는 것이 애처롭고 부용 또한 타향의 칠흑 같은 빈방을 홀로 찾아드는 것이 외롭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내던 어느 달빛이 고요한 날, 부용은 조촐한 술상을 마련하고 거문고를 타면서 오늘은 돌아가지 않고 대감을 모시겠다고 응석을 부렸다. 오직 대감만을 위한 부용의 거문고와 춤사위는 정사는 대쪽같이 하지만 시와 낭만을 아는 노대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대감이 취한 눈으로 부용에게 노랑유부(老郞幼婦: 늙은신랑에 어린신부)라는 시를 아느냐고 묻는다. 이에 부용이 '성수패설'에 나오는 노랑유부라는 시라면 제가 조금 알고 있으니 한 번 낭송을 해보겠다며 낭랑한 목소리로 서슴없이 읊조림을 시작했다.
老郞幼婦(노랑유부)
二八佳人八九郞 열여섯 아리땁기만 한 신부에 일흔두살의 신랑이라
蕭蕭白髮對紅粧 쑥대같은 백발이 붉은단장한 연인과 마주했네.
忽然一夜春風起 홀연히 한 밤에 봄바람 이는가 싶더니
吹送梨花壓海棠 하얀 배꽃 날아와 붉은 해당화를 누르는도다
시를 들은 노대감은 허공을 보고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팔구랑보다도 다섯 살이나 더 많으니라.”
이에 부용이 대답하기를
“소첩도 이팔가인보다 세 살이 많사옵니다. 그러니 붉은 꽃이나 흰 꽃이나 봄에 피는 꽃은 다 같은 꽃이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77세의 노랑과 19세의 유부는 세월의 강을 넘어 드디어 금침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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