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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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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남달랐다. 그녀에게 글을 가르친 사람은 바로 삼촌이였다. 삼촌은 유학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와 의학에도 출중했으며 한창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나이의 그녀는 그런 삼촌의 명석함과 재주를 모두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입했다.
팔자런가.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천애 고아가 되고, 의지할 곳이 없어 퇴기의 수양딸이 되어 기적에 오른 부용의 타고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은 16세에 성천에서 열린 백일장에 나가서 당당히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으니 가무와 음률은 물론, 시문에 이르기 까지 성천의 명기(名妓)가 되어 있었다. 어리기만 한 기녀가 장원을 하자 사람들이 ‘설교서’라고 칭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다재다능한 명기가 되었다 한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몸으로 한 해를 멀다 않고 새로 부임해 오는 신임사또의 수청을 드는 일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부임하는 사또마다 다른 기생들을 다 젖혀두고 오직 부용만을 찾는 데다가 퇴기인 수양모 또한 재물에 눈이 멀어 부용을 이용했으니 어린 부용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날도 바람이나 쐬려고 성천 근처의 신성강(新成江) 언저리 강선대(降仙臺)의 산과 물, 달과 바람이 좋다 하여 사절정(四絶亭)이라 붙여진 정자에 오르니 평소 부용을 흠모해온 그 고장에서 풍류로 이름깨나 날린다는 선비 한 명이 뒤를 따라붙었다.
그는 정자에 오르자 부용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사절정을 시제로 한 수 지어보라고 말을 걸어왔다. 익히 그의 행실을 알고 있는 부용은 같잖기도 하고 이참에 다시는 자신을 넘보거나 희롱을 못하도록 일필휘지를 했으니
四絶亭
亭名四絶却然疑 정자 이름 어인일로 사절인가
四絶非宜五絶宜 사절보다 오절이 마땅할 것을
山風水月相隨處 산과 바람 물과 달이 어울어지고
更有佳人絶世奇 절세가인이 함께하니 오절이 맞지 않은가
‘황진이를 松都三絶이라 했거늘 나를 成川五絶이라 한들 누가 무어라 할 소냐.’
그러니 건달 선비는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린 셈이다.
그러자 글깨나 읽은 이 한량 역시 포기하지 않고 노골적인 한수로 다시 수작을 걸어왔다.
平生一片心 평생 나의 오직 한 마음은
欲渡銀河水 (자네와)은하수를 건너는 일 뿐이네
‘지가 무슨 견우(牽牛)나 된다고 감히 나를 넘봐?’
화가 머리 끝 까지 난 부용은 붓을 뺏어 한 수 휘갈겨 놓고 사절정을 내려왔으니
銀河天上水 은하수는 하늘에 흐르는 물인데
世人豈能渡 속세의 인간이 어찌 감히 건너려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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