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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8- 『집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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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으면 머물고 싶고 길을 보면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어떤 이는 집에 있으면 길이 그립고 길을 나서면 집이 그립다고도 한다.
집을 나서는 일을 가출 또는 출가라고 한다. 출가의 함의는 종교적 신념이나 어떤 목적을 두고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온전히 집을 떠나는 것을 말하며, 가출은 가족 구성원 몰래 무단으로 집을 나서는 것을 말한다.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집 밖 출입은 외출이나 여행일 것이다.
누구나 젊은시절 한두 번은 짧든 길든 가출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집과 학교, 집과 직장을 오가며 보냈으니 인생이란 가출과 귀가의 반복이었던 셈이다. 떠나있을 때는 홀가분하면서도 그립고, 길을 만나면 집을 떠나 길을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한동안 주말부부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 시절만큼 행복이 충만했던 때도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생긴 말이 ‘3대에 걸쳐 공덕을 쌓아야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했다. 아내의 잔소리를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였으니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주말이면 차를 몰아 서너시간씩 걸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지루함보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했었다.
대저 인생에 있어 집이란 무엇이며 길은 또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편안한 집을 두고 그토록 길을 떠나기를 원하는 것일까. 칼리 지브란의 명상록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있다.
‘내 집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곳은 당신의 추억이 묻혀 있는 곳이니 나를 떠나지 마오.” 그러자 길이 말하기를 “길은 당신의 미래이니 당연히 길을 가야하오.”’
그러기에 길은 미래를 향해 떠나라고 있는 것이며 집은 안식과 살아온 날의 흔적을 찾아 돌아오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모든 것은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길을 따라 미래로 향한다.
백신 접종을 눈앞에 둔 여유 때문인가. 오늘 하루는 속절없이 찾아오는 역마살을 꾹꾹 누르고 집의 추억을 뒤적여 볼 생각이다. 다음날에는 영락없이 길 앞에 다시 서 있겠지만 길과 집을 반복하며 오가는 인생의 궤적을 따라 날마다 들꽃이 바람에 수런거리고 밤마다 별이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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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이렇게 자주 오던 봄비가 있었던가 할 정도로
대지를 자주 적셔주는 봄비......어제 밤에도 내리던 봄비가......
구름 한 점 없는 상큼하고, 눈부시게도 찬란한 햇빛이 대지를 덮어 주고 있는 지금....
그대의 멋진 글을 읽으니 더 상큼하게 느켜지는 가슴.....
까치우는 소리가 들리니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려나?
빌어먹는 거지도 정신장애를 갖은 사람도 길을 걷지요.
왜 걷느냐고요? 가야할, 걸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도 목적이 있거든요.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요.
백신 잘 맞으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그렇지요.
걸어야 할 이유, 그 이유를 찾아 걷기도하지요.
그래서 길 위에서도 길을 묻곤합니다.
백신은 맞으셨는지...
그리고 그간의 시조공부 결실을 한번 보여줄 때도 되지잖았나 하는 바램을 전하오.
kimyki님의 댓글
kimyki 작성일
문밖은 길이요 그 길은 나만의 길이기를 소망하는 나의 길이며 그 길 끝은 문이지요.
그 문 안의 공간만은 나만의 공간이길 소망하는 아집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구요
아집이란 원래 본능적 배타심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설치는 심리이구요
이것이 사내들의 마음이지요.
손오공도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듯 사람은 드나드는 한 개의 문과 여러 인간들에게 나만의 지배권을 빼앗긴 초라한 길 하나를 오고가는 여행이 인생 아닐 지요 ㅎㅎ
오랫만에 여유롭게 누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그렇습니다.
주유천하를 한듯 했지만 억겁의 세월속에 겨우 부처님 손박닥 안을 잠시 오갔을 뿐입니다.
누구나 인생은 집을 중심으로 타원형 공전만 해 왔으니 '삶은 달걀'이라는 말이 나올법도 합니다.
1년이 넘도록 자전만 해 왔더니 답답증에 약간의 어지럼증 까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접중을 마치면 득달같이 내려 쏠 계획입니다.
아직 엄중한 시기입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