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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과 도연맹의 바둑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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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仙界)
신선산(神仙山) 중턱에 아담하게 걸쳐있는 시성루)詩聖樓)에선 오랫만에 만난 이백과 도연맹이
바둑판을 벌린 모양이다.
백중지세의 바둑판은 홈쳐보던 행자승(行者僧)은 쉽게 승부가 나지않을 바둑판이 지루했던가
함께 바득판을 지켜보던 소월시인과 미당시인에게 가볍게 묵례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을 재촉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단풍이 곱게 물들었던 시성루에는 어느덧 만추의 낙엽들이 쌓이고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선운사에 만발한 상사화를 마지막으로 유람하고 되돌아가던 행자승이 시성루에 당도하니
소월시인과 미당시인이 자리를 뜨지 않은 채 그 곳에 계시는 것이였다.
도연맹과 이백의 바둑판 결과가 궁금했던가
행자승이 입을 열어 묻는다.
"어느 분이 이기셨습니까?"
시성루(詩聖樓) 난간에 서서 산 아래 계곡을 따라 굽이치는 속세의 강(俗世江)을 굽어 보시던 미당시인께서
골깊은 미간에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띄고 뒤를 돌아다 보며 입을 연다.
"백돌을 잡았던 태백(太白)이 홀련히 돌을 놓고 저기 보이는 소요산(逍遙山)을 넘어 이미 서산골(西山谷)에 드신지
달포는 족히 넘었을 것일세"
소월시인이 말을 거든다
"진정한 고수에겐 이기고 지는 경중(輕重)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지,
불현듯 좌정하고 홀련히 일어 설 수 있음이니 마치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사는 것이라네,
좌정하였다 하여 머문 것이 아니요,
일어섯다 하여 떠난 것이 아니이니 어찌 세인이 그들의 속내를 헤아려 보겠는가.
행자승은 잠시 쉬었다 가시던 길이나 그저 가시게"
마당과 소월이 눈이 삔 모양이다.
행자승의 형색이 남루해 보였던가,
행자의 시성을 몰라보고 함부로 일설(一舌)로 희롱하였도다
신선산의 가을이 깊을 대로 깊어진 탓인가,
행자승의 등넘어로 남겨진 등굽은 신선산의 산세는 적막하기만 하다
선운사를 에워싼 상사화 붉은 빛이 서산에 걸려 노을이 짙다.
무미건조한 바람이라도 한줄기 불어주면 좋으련만 ---
고즈넉한 선운사에는 풍경 소리도 멈추고
산사의 뒷담을 넘어오는 헛기침 소리
컹컹!
오! 창궐했던 속세의 바람소리여!
오늘은 그것 조차 그립구나.
일설(一舌)/소생의 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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