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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길을 묻다 180 - 『벽두劈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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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1-0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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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긴 잠에서 깨어 그대를 만나러 가리라
설레이는 가슴일랑 지그시 누른 채
동백꽃 닮은 선홍빛 마음으로
그대를 만나러 가리라
새해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일구리라
서툰 쟁기질일망정 묵은 잡초를 걷어내고
씨줄로 날줄로 이랑 만들어 씨 뿌린 후
옛 농부의 마음으로 가꾸고 거두리라
새해에는 가끔씩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 길을 떠나리라
삼신할미가 점지한 제 모양과 제 색깔과 제 목소리 제 표정으로
제 복만큼만 어깨에 걸머지고
소를 닮아 뚜벅 뚜벅 제 할일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나를 만나러 길을 떠나리라
치열하게 살아왔던 날의 집착과 격정을 내려놓고
팽팽하게 잡았던 삶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은
온유溫柔함이 나를 지배하게 하리라
나와 그대의 삶을 비교하지 않으며
비록 작을지라도 가진 것 나누며
투박한 질그릇 같은 소박함이 힘이 되는 날들이 되리라.
그리하여 옷깃 다시 여미고 그대를 만나면
연필로 꾹 꾹 눌러 쓴 마음으로부터의 평화를 꺼내어
오롯이 전해주리라
산수유 가지마다 서설瑞雪이 덮히는
새해벽두劈頭
비워진 마음으로 새길 위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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