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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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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윤기
작성일 2019-12-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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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장미
바람소리/김윤기
연둣빛 4월의 리듬과 파릇한 5월의 음률로 난타 당한 꽃잎은 응혈이 붉다.
빛의 그림자 안에 숨어 카시오페아의 젖무덤을 훔쳐보았던 북극성의 눈빛은
지난 밤 유난히 빛났었다.
그 밤 지나고 떠오른 아폴론의 무릎 아래서 불꽃처럼 살아난 것은
휘어진 뼈와 모진 가시 뿐
거친 땅과 암울한 하늘을 어루만지며 미동하는 도심의 혈맥을 찾아가던 태초의 시계 바늘은
정오의 선을 넘어 선 빌딩 유리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흙 위에 흙으로 쌓은 담장이 무너진 곳은
돌멩이 하나로 들짐승을 사냥하던 원시인들이 멸족(滅族)해 버린 무덤들이다.
넝쿨은 그 무덤에 뿌리를 내리고 인디언의 창끝 같은 가시를 키우며
콘크리트와 철창으로 세워진 담장 위로 기어올랐을 것이다.
드디어 꽃잎 여는 날
땅의 변방으로 밀러나 있던 원시인들이 도심의 거리에서 붉게 살아난다.
고향을 등지고 산 도시인의 세월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갓 튀어나온 신기루처럼
빌딩의 허리쯤에서 감도는 시간
간간히 바람 불었어도 거친 비는 내리지 않았다.
잡식성 공룡들이 뿌연 카오스의 거리를 위반 속도로 떼 지어 질주하는 뒤편
높고 한적한 담장 위에 걸터앉은 장미꽃 붉은 입술
그 아찔한 눈빛
장원(莊園)의 동산에서 쫓겨난 미생(未生)들의 아리디 아린 향수(鄕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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