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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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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1-15 16:51 댓글 0건 조회 1,0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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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딴엔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도 했다고 본다.

남보다 더 강하게 살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남들이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다는 조그마한 일념도 가지고 있었다.

 

날고뛰는 분야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다양함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본다.

어느 구석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죄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상상을 하지 않는 일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돼 버린 것이다.

내가 없다하여도 가정이건 학교인건 사회인건 나라이건 간에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때 모 대통령이 비명에 횡사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라가 금방 망할 줄 알았다.

물론 죽고 난 다음 나라가 좀 시끄럽긴 하였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보다 명목상 국민소득이 높아도 한참 높아지지 않았는가.

유아독존의 시대는 가버린 것이다.

 

좀 특이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데 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주변을 살펴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다 플러스알파까지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나의 역역을 건드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길 이유는 없겠지만 자신보다 잘난 사람 너무나 많은 게 현실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내 자신의 카드를 함부로 꺼내는데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교직에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될 개연성이 높기에 함부로 내 자신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과거에는 그래도 선생이 지식인이자 그 분야에 전문가적 대접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지금 그런 대접을 받고자 생각한다면 한 순간에 일천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의 세계로 가리라 본다.

 

옛날에는 날아다니는 자들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무협지에 보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 날아다니는 것쯤은 우습게 묘사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 날아다닌다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서 머물렀다고 본다.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으면 날아다닌다는 말이 일상화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어떤 목표점을 가지고 10년 정도 투자하면 도가 트인다고들 한다.

도가 트인다는 것은 남들이 도저히 범접하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갔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않아도 예전에는 도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 많던 도사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음을 알 수 있다.

도사에서 전문가로 격이 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할 정도이다.

 

필자도 몇 십 년 동안을 백묵을 가지고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백묵계에서는 도사가 되어도 한참 되어야 할 시점이나 누가 나보고 도사라고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못 봤다.

결국, 도사가 안 된 것이다.

도사는 안 되었지만 이 세계에서 달관의 경지까지는 가야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또한 남의 일처럼 보이는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내 보다 나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수시로 느끼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인 것이다.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나의 존재를 나타내고 싶지만 내 옆에는 내보다 잘난 전문가만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딴에는 열심히 뛴 것처럼 생각되나 나의 주변에는 날아가는 사람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주름을 잡아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둘러봐도 세상은 너무나 잘 난 사람 많다는 것이다.

뛰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날아가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 게 현실인 것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졌다는 이야기가 딱 맞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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