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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성을 존중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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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성을 존중하는 사회
독일의 프랑크 푸르트는 (Frankfurt)는 인구의 40% 이상이 175개국의 외국으로부터 이주해온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표적 다문화 도시이다.
이주민 65만의 인구 가운데 미등록이주민 (불법체류자)이 16만명 이상으로 이주민 전체의 24.7%를 차지하고 있고 50%인구가 카토릭과 개신교신자이며 나머지 50%는 다른 종교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어울러져 살아가고 있는 다종교도시이다.
기독교인들이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평화적으로 살아가기,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하며 동시에 ‘다원적 상황을 대한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원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는 평화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프랑크 프루트의 종교교육 연구소는 1945년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바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교육을 해 오고 있다고 한다.
종교간 교육 영역은 크게 기독교 인본주의 전통교육을 포함한 윤리교육과 관심과 관용교육, 정의와 연대교육, 평화로운 공존교육, 5가지로 되어 있다고 한다. 모두가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데 있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종교간의 대화 교육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로 푸랑크 프르트는 현재 170개 학교중 35개학교가 종교간 대화의 측면에 기초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원성을 자각하도록 도움을주고 종교간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고, 인종차별 만 아니라 ‘다름’을 ‘차별화’ 하는 폭력적 상황에 노출 되지 않도록 다원적 현실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도우려고 노력 하고 있다. “인종간의 발생하는 갈등이나 폭력사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위해서는 편견과 공포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 하였다.
인종간의 우열이 존재하고 집단간의 가치가 다르다고 편견과 독선으로 인하여 ‘차이’를 ‘차별화’ 한 폭력의 잔혹성을 경험한 독일은 자신들의 다문화, 다종교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정부, 학자, 기관, 교회, 학교, 모두가 이 문제를 ‘공존적 사회통합’이라는 공동의 정신과 원칙을 지향하면서 각기 다른 역할을 감당 해 가고 있는 사회이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극단적 인종차별의 상처를 지닌 독일의 역사에서 다시는 그러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토록 사회 전체가 최선의 노력을 함께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차이’를 바로 인식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을 때 얼마나 커다란 폭력이 생산되는지를 또한 그 폭력의 경험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상처와 고통을 받고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지금 현실화 된 코로나19 바이러스(COVID-19)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종교간 대립으로 인한 세계전쟁이다.
신이존재 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각자의 믿음이고(信念)이다. 억지로 할 수 없는 일,그러므로 '믿음은 저마다의 것이 아니라고' 설파 했기에 논쟁으로는 백해 무익(百害無益)한 논쟁이다. 인류의 기원을 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회‘도 있고 진화를 주장하는 다윈의학설을 믿는 ’생물학회도‘ 있다. 각자가 학설을 믿고 따라가면 될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종교인구는 77억이다. 어떤 특정한 한사람이 신이 있다, 없다고 하는 말은 전혀 신뢰성을 얻지 못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항아리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간장종지가 항아리속에 들어 갈 수 있지만 , 간장종지 안에 항아리가 들어 갈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좁은 집약적인 국토에서 살아가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좁은 마음이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절대 다투지 않는데, 울타리 안에 있는 형제, 동문들이 쓸데없는 잇슈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있다.
다가올 총선으로 정치적 진보냐? 보수냐? 진영을 갈라 놓고 논쟁 할 필요가 없다. 독수리가 양 날개가 있어 창공을 날 듯이 진보, 보수 여,야가 함께 공존해야 한다. 유신(有信)론이냐 무신(無信)론이냐 ? 백해무익한 소모적 논쟁이다. 왜, 우리가 독일을 본받아야 하나? 그들은 동독과 서독이 오랫동안 분단 상황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들이 이룬 통일(統一) 업적과 노하우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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