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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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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순석 작성일 2019-12-22 08:48 댓글 2건 조회 7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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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석양(夕陽)

홍 순 석

오늘, 음력 섣달 스므닷세.

어머니의 팔순 아홉 생신이시다.

지난해 미수(米壽)를 보내시면서 내년 생신은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직은 가족들이나마 알아보는게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침대에서 먹여드리는 생신상을 받으시는 어머니시다.

지난 몇 년간 직장암수술로 장루(腸瘻 Stoma, 인공항문)환자이시면서 또 장루 위치 변경수술, 그리고 노환에 따르는 기억력 쇠퇴등 힘들게 석양을 보내시는 어머니시다.

지난해 어머님이 입원하셨던 병원에서 원장수녀님께서 섬망(=譜妄)증상이 계속되고 회광반조(回光返照)가 올수도 있고 임종하실 경우 장례식장으로 이동시에 입히실 간소복을 준비하고 장례식장을 알아두라는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임종실로 이송하던 일이 눈에 선한데 벌써 1년이 지나갔다.


요즈음도 찾아오는 가족을 알아 보는것 이외는 전혀 묻는 말에 맞지 않는 대답만 되돌아온다. 이젠 완전치매로 지나간 세월 중에서도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기에 내가 태어나기 전 또는 어린시절 중에 일어난 일들이나 살아온 얘기, 그리고 그 당시의 주변사항과 사실을 짧은 문장으로 말씀하시기에 이해가 어렵기에 모자의 대화는 남이 볼 때 바보들의 대화로 여길 것이다. 40여년 돌아가신 아버지가 찾아오셨다던가 하나뿐인 이모님도 작고하신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어젯밤에 마실 오셨다든지, 또는 시장통에서 젊음을 보내시던 친구들의 가정대소사, 자식들은 알지도 못하는 어머니 어린시절 영월에서의 살던 기억들을 토해 내시는 등이 그렇다.

어머니는 광산(光山) 김씨다. 신라 문무왕의 셋째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삼는 왕족이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수 본관별 오대 문중에 속하는 성씨다.

향교대성전에 전무후무하게 부자(父子)로 배향된 예학의 태두이신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선생과 김집(金集)선생의 후손이기에 당시 절친 이셨던 달성서씨인 어머님 친구와 양반임을 서로 주창하셨었고 그어른은 작고 하신지 오래되셨다.

그리셨던 분이 이젠 두세살의 어린아이와 같으시다. 엊그젠 “이 좋은 세상에 어찌 죽어야 하는지?”하는 삶의 애착도 아주 잠깐 나타내시기도 하셨다.


순간 어머니의 석양은 아직 멀리까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음력 12. 25)이 어머니 생신이다.

전세계 인구 70억명이 살고 있고 하루에 1,900만명이 생일을 맞고있다. 인간 각개인은 싫으나 좋으나 1년에 한번씩 생일을 맞고 그날을 기념이나 축하를 하면서 살아간다. 누구나 맞이하는 행사이기에 별로 특이하다고는 여기겠냐만, 그래도 색다르게 이날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지 많을 것이다. 우리형제도 틀리진 않다. 어머니 생신이 중요한 형제들은 연례행사이기에 형제 모두는 참석을 원칙으로 했지만 설 닷새를 남기고 연속 내려오기가 부담된다며 이해해 달라며 막내동생은 호랑새벽에 전화왔었다. 그리고 삼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셋째동생이 어머니께 드린다며 생일선물로 시(詩)액자 하나를 들고 왔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시를 쓰며 행동이 남다르기에 이해하면서 액자를 읽어보던 형제들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엄마

                                     [엄마아들 홍순근]

1.

외할아버지 성을 따라 「김金」씨 성에

인생이 늘 봄 같으라고

「춘 春」자 「자 子」자로 호적에 오른 이름

「김 춘 자 金春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춘자!」라 어여삐 부르셨겠고

당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형!」이라

「언니!」라 친밀히 부르셨죠

제 아내는

「어머니...!」라 부르고

저의 여섯 아이들

「할머니!」라 부르지만

저는 어릴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엄 마!」라는 이름이 가장 좋습니다.

2.

예순을 향해가는 나이 임에도

당신앞에선 철들기가 싫은 것은 왜인지요?

3.

시절이 좋아 밤길조차 대낮같이 환한데도

어둡기 전에 일찍 돌아가라는 당신의 말씀

어떤 가로등 불빛인들 이보다 더 밝겠습니까?

4.

구순을 앞에 두고

늙고 병든 몸이 미안하신 당신!

당신의 그 눈빛,

제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별빛입니다.!

5.

“보고 있어도 보고 싶구나!”

예상치 못한 당신의 노래 한 소절!

예순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이제 얼마남지 않았을 인생을 생각하며

더 늦기 전에 들려주고 싶으셨나요?

“보고 있어도 보고 싶구나!”

당신의 사랑 노래 한 소절조차 감당하지 못해

저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6.

엄마, 당신은

제게 영원한

눈물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리움입니다.

7.

엄마, 정말 감사드려요

일평생 제 엄마가 되어 주신 것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를 저의 엄마로 주신 것

삶은 수많은 사연과 인연으로 점철되면서 사연은 또다른 이야기로 전개되고 인연은 하나 둘 건너면서 폭넓은 인간사를 만들어간다.

며칠전에는 정선에 사는 사촌동생 결혼식날을 하루 전날로 착각하시고 사람을 불러 광밥(옥수수뻥튀기)좀 내오라시며 저녁먹기 전에 입이 심심하니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부탁까지 하셨다. 자식사랑으로 평생을 사시면서 이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아무도 없으신데 내리사랑의 신념만은 변치 않으시다.

어머니! 이젠 석양을 기다리지 마시고 어머니 맘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세요. (2015.12.25음)

그런 어머님은 생신 25일뒤 이듬해인 2016년 1월 20일 소천하셨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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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엄마, 당신은
제게 영원한
눈물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리움입니다.
***************************
망향의 소실점처럼 아련한 점 하나로 존재는 어머님에 대한 기억
그 기억의 무게는 모정의 무게로 또는 우주의 무게로 가슴 깊이 담아 두었을 아들의 심정 또한
우주를 품은 무게일겁니다.
무게 없음의 빛의 무게로 존재할 어머님의 사랑을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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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이 글쟁이 후배님의 등단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자주 자주 찾아주시기를...
아예 고정출연을 하셔도 좋을듯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