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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장군 묘소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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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3-20 10:03 댓글 0건 조회 1,0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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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숭겸장군의 묘소를 다녀오다.
 

춘천 공지천 서쪽에 가면 시내와 다른 모습의 세계가 펼쳐진다.

춘천에 살지 않은 이상 호수 서쪽을 가 볼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서면에도 사람이 살고 그쪽에도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춘천 서면하면 박사마을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제적으로 인구수에 비례하여 박사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 한다.

 

박사도 좋고 석사도 좋다.

실제 춘천에는 석사동도 있어서 석박사가 유난히 돋보이는 곳이 맞긴 맞는가 보다.

여기서 박사를 논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춘천 서면에 우리 역사에서 특이한 공적을 세우신 분의 묘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근처를 흐르는 물줄기가 하나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작은 동네들이 도로 양쪽으로 나타난다.

지명은 춘천이지만 사는 모습은 전형적인 농촌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도랑을 따라서 서쪽으로 큰 신작로가 펼쳐진다.

물론 이 도랑의 종점은 공지천 호수로 귀착된다.

주변에 간판을 보면 그 도로가 신숭겸로라고 적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도로를 따라서 죽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것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뿐 이외에는 멀리 보이는 산이 고작인 것 같다.

승용차로 10여분 정도 강산을 훑어보고 올라가다보면 신장절공묘역이 나온다.

웬 이름이 이렇게 길고 복잡하고 헤깔리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하기가 좀 힘들었다.

풀어서 해석해 보면 앞에 신은 신숭겸의 성자를 딴 것이고 뒤에 장절공은 장렬하게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에 대한 왕이 하사한 시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신숭겸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살았던 사람으로 원래 태생지는 전남 곡성지방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지금도 신숭겸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을 정도로 당대에 유명한 장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숭겸을 평산신씨의 시조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신숭겸장군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화자에 오르는 것은 고려를 세운 왕건이 세력을 확장할 무렵 결정적으로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가 세워지기까지 우리 한반도의 역사는 좀 복잡했다고 본다.

후삼국이 형성되면서 지방의 호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채우기 위하여 사방에서 군대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그 중에 신라에 왕족이었던 궁예가 태봉국을 강원도 철원지방에 세우면서 세력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당시에 궁예의 수하에 있던 배현경, 홍유, 유금필, 복지겸 등이 궁예의 폭정에 항거하여 그를 폐위하고 형제 결의한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고 고려를 개국함으로써 개국원훈 벽상공신 대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한반도에는 후삼국이 존재하면서 이 세 나라가 세력 확장을 위해 전쟁에 전쟁을 치르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6.25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당시에는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마침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의 전략에 말려들어 왕건이 죽을 고비에 이르게 된다.

이에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입고 전투를 벌이다 장열하게 전사를 하게 되었다.

 

견훤이 신숭겸의 수급을 가져가자 왕건은 그 자리에 황금으로 얼굴을 만들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서 지금의 묘자리에는 세 개의 봉분이 펼쳐져 있다.

황금으로 만든 얼굴이 알려지면 도굴의 우려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세 개의 봉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중 어느 봉분 밑에 유골이 있는지 모르게 하였다고 한다.

 

역사에 정설도 중요하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신숭겸장군의 묘가 춘천 서면에 있는 것도 특이한 스토리도 우리의 호기심을 더 자극시키고 있다.

신숭겸장군의 묘역은 우리나라 명당 중에 랭킹 수위에 올라갈 정도로 대단한 곳이라 한다.

 

필자가 아침 일찍 그쪽으로 갔었는데 일출을 바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온 천지가 한 눈에 다 보일 정도였다.

물론 장엄한 뒷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지형을 바라보노라니 명당 중 명당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고려시조 왕건이 자기가 죽으면 묻힐 후보지로 현재 신숭겸장군 묘역을 봐 두었는데 그 자리를 내 주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나말여초에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던 장군 중에 장군인 신숭겸의 묘가 우리 강원도 춘천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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