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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Dying 연구. 사람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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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참으로 슬픈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을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투신적 삶, 순교적 헌신은 죽음을 넘어선 인간의 승리다. 순교와 투신은 바로 죽음을 넘어서서 생명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확인하고 보증한 장엄한 선언 이다. 죽음이란 사실 한 개체적 삶의 종말 일 뿐이지 결코 생명자체의 단절은 아니다.죽음을 넘어서서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이란 초월을 지향한 인간이 그 무한한 세계에 접하는 필연적 과정이다. 씨앗의 비유가 이를 암시 한다. 봄철에 땅을 갈고 농부는 씨를 심는다. 그 씨앗은 싹이되어 땅을 뚫고 나와 자라 열매를 맺는다. 땅 속의 씨앗, 그것은 열매의 근원이다. 그 씨앗은 큰 생명으로 변 했을 뿐 결코 무(無)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은 초월적 삶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죽음이란 초월적 삶에로의 이행 단계일 뿐이다.
사람은 육체와 정신의 합일(合一) 관계에 있다. 사람은 가시적, 물리적 관계와 불가시적 정신적 관계를 함께 지닌다. 손으로 잡고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적 접촉은 그자체로 분명하여 논증이 필요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비록 볼 수 없고 잡히지 않지만 생각으로, 정신으로, 기억으로 감지 할 수 있는 정신적 관계도 있다. 기억을 통한 정신적 관계는 비록보이지 않더라도 물리적 관계보다 훨씬 더 진하고 강한 일치라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죽음이란, 바로 물리적 접촉을 넘어선 기억을 통한 초월적 세계와의 합일을 말 한다. 죽음이란 존재 양식의 변화(變化) 이다. 물리학의 질량변화의 원칙이 에너지 법칙으로 새롭게 설명되고 있지만 일정한 질(質)과 양(量)의 사물은 결코 소멸되지 않고 모습만 다를 뿐 지구상 어느곳에 꼭 존재(存在)한다는 주장과 그만한 질량이 일정한 힘을 발휘 한다는 학설 은 생명이 지닌 힘과 존재 양식의 변화 를 깨 닫게 하는 비유이다.
죽음은 삶의 확인이며, 고통의 필연적 수련이다. 죽음을 통해 삶과 진리를 확인하는 선현들을 우리는 보아 왔다. 그분들은 역사와 후손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의인들의 죽음이 귀감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죽음보다 강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죽음은 죽음으로 극복된다. 역설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매 순간, 매일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늘 성실히 살게 마련이다. 이러한 삶을 우리는 종말론적 삶,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높이 평가 한다.
삶이란, 한사람의 한계적 상황이라면, 죽음 또 한 한계적 상황이다. 우리의 삶은 부여 받은 죽음을 수락(受諾) 한다. 중요한 것은 삶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 했는가라는 물음이다. 과연 자기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 했는가. 이웃, 사회, 를 위하여 헌신 투신 했는가? 예 그렇습니다. 라고 힘 있게 대답 할 때 비로소 우리의 꿈은 성취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구원이며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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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착하는 구조적 본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에 사람은 현실을 초월하는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기엔 한계가 있다 싶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학술적 인문이나 철학, 또는 종교적 지식이 아닌 스스로 젖어드는 개별적 영감에 의해 주어지는 확신이며 믿음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 확고한 믿음만이 자신의 영혼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영원한 에너지가 아닐지 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