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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 용추폭포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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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연2 작성일 2019-01-21 10:02 댓글 3건 조회 9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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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 용추폭포!

40여년전 처음 접했던 용추폭포는 그냥 관광지의 일부분일 뿐이었으나 

오름횟수를 거듭할수록 한가지 의문사항이 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용추폭포 전면에 새겨진 글자는 누가 썼을까

그리고 저렇게 물이 콸콸 쏟아지는 상황에서 글자는 어떻게 새겼을까?

무지몽매한 사람은 정보통신 발달의 혜택을 받은 후에야 글쓴이를 알았지만 

글씨를 어떻게 새겼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글씨를 쓴 사람은 조선시대 삼척부사로 재직하던 유한준(兪漢寯)으로 

당대의 명필가였으며 바위에 글자를 새긴 시기는 정조21(1797)12월이라고 나와 있다.

 

전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바위에 글자를 새긴 연유는 무엇일까?

이 또한 의문이 들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題名.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유람 중에 행한 활동 중에 특별한 것으로 題名을 꼽을 수 있다

제명이란 경치 좋은 장소에 자신의 이름이나 시를 쓰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주요 관광지에서 다녀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낙서를 한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랜 전통이 있는 것이다.
제명은 모든 산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특히 제명이 성행했던 곳은 일찍부터 많은 유람객들이 찾았던 금강산이다.” (문화유산신문 발췌)
 

그럼 저 강한 화강암에 글자를 어떻게 새겼을까?

이 또한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명산에 명찰이라고 명산엔 반드시 사찰이 있기 마련.

하인, 노복들이 새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근 절에는 전문적으로 새기는 각자승(刻字僧)이 있었다

또 예전 우리 관광지 사진사 처럼 현지에 각자(글씨를 새기는)해주는 각자공도 더러 있었고 

불화로를 준비하고 정을 달구어 두드려야할 야장(冶匠)들도 사대부 뒤를 따르기도 했다

글은 사대부들이 바위에 쓰고, 새기고 파내는 작업은 승려 몫이었다.

금강산 내 사찰의 경우 내방하는 사대부, 관료들에 대한 음식 마련 ,침식 제공

가이드에 산행 가마꾼, 여기에 너무도 많은 각자 요청에 따라 절을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사대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고 싶어했고 자신은 이런 의욕만 가지고 명산을 관람 했을 것이고 

그 후속 작업은 온전히 사찰의 각자승이나 각자해주는 각자공의 몫이었다는 결론이었다

무릉계 너래반석에 빽빽이 들어찬 글자들이 이렇게 해서 새겨져 있었구나 생각하니 

그 당시 각자공 혼신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게 다가온다.


더불어서 용추폭포 전면에 새겨진 글자를 각자하면서 아이디어를 짜 냈을 각자공의 고뇌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폭포수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한여름 장마철은 피했을 것 같고 갈수기라고 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길을 

돌릴수도 없는 일. ()위에 족장목을 걸쳐놓고 작업을 한다고 해도 부자연스럽기는 매 한가지였을 것 같다.

그렇다! ()의 물을 딛으면 될것이 아닌가물을 딛을려면  물이 얼면 되잖아! 왜 그걸 몰랐을까?

그래서 용추폭포의 龍湫라고 새긴 날이 12월이었구나!

음력 12월이면 양력 1, 바로 지금쯤이다. 大寒 무렵, 갈수기에다 맹추위로 폭포마저 얼어버리는 이즈음이 

각자(刻字)작업하기 가장 적합한 날이었을 것 같다.

선대인들은 그런걸 이미 터득하고 있었을텐데 미련스런 후대인은 폭포수가 얼어버린 후에나 알았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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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아, 그렇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것과 직접 관련이 없다하여 간과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봅니다.
저도 용추 쪽에 몇 번 갔다왔는데  그 폭포안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새길 수 있는 색다른 상황론에 대해서도 아는 수준을 너머 깨닫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이야기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용추폭포에 갈 기회가 닿으면 두눈을 좀 더 크게 뜨고 그 장면을 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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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단아하고 올곧게 쏱아지는 폭포를 포용하는 듬직한 바위에 
너절함도 넘나듬도 없이 혼을 담아 새긴 딱 두글자.  龍湫,
옛 선비의 멋과 기개와 향기가 묻어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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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67년 11월부터 73년도 2월까지 그곳 시멘트 공장에서
근무할 때와 그리고 그 후에도 꽤 여러 번 삼화사와 무릉계곡 용추폭포를 가 봤지만,
이런 탐구적 관심은 전혀 없었는데 늦게라도 일깨워 줘 고마워요,
나 참 얼마나 덜퉁한 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