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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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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7-23 22:12 댓글 1건 조회 79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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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또 납시오.


  사또가 지금으로 말하면 시장이나 군수쯤 되려는가
. 현대의 관직 임무나 권한과 비교하기에는 좀 어려우나 당시에는 입법, 사법, 행정이 모두 사또에게 쏠려 있었는지라 현재 관직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권한이 있었으리라 본다. 또한 한양과 워낙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라 모든 권한을 지방 관료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운송이나 통신이 발달했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당시에 한양까지 문서라도 하나 전달하자면 최소한 1주일은 걸렸을 터이니 자연스럽게 지방 관료에게 막강한 권한이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권한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관계로 관료가 부임하여 어떤 정치를 펴는가는 오롯이 관료의 판단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강릉은 대관령이라는 험한 준령을 넘어야 올 수 있는 곳이라 아무래도 인적교류가 원활치 않았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사또가 우리 강릉 출신이라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득이 타 지역에서 강릉으로 부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고을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수장이 부임하는데 적당히 맞이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괘씸죄에 걸릴 가능성도 있었으리라 본다. 이렇다 보니 지방의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죄다 사또 부임 날에 얼굴도장을 찍기 위하여 동헌으로 몰려왔으리라 본다. 소위 명망이 있는 지방호족들은 죄다 모이는 날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지방호족만 오겠는가. 미래에 지방호족이 될 후보자 그리고 그 지방후보자에 빌붙어 사는 사람, 아니면 호기심이 많은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이 사또의 부임 날에 모여 드리라 생각된다.

 

  무대는 강릉 도호부 동헌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에 동헌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겠지만 복원된 관아에서 공연을 하는데 대하여 현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일단 조명의 포커스는 사또의 의자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공연마당의 생생한 현장을 살릴 수 있도록 맞추어져 있었다. 잔치에 술이 빠지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강릉 토속의 막걸리를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았다. 탁자에 목욕탕 의자를 배치하여 먼저 온 사람들이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주막의 이름은 사임당 주막으로 컨셉을 잡았다. 사임당의 격이 주막으로 일치되는 그럴싸한 장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큰 행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는 음악이 반드시 수반되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 만큼 국악으로 그 역할을 다 했으리라 본다. 당시에는 관기가 있었음으로 그들이 거문고나 가야금으로 음악을 관장하여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처럼 OO시 관현악단이 있어서 축하 연주를 해 주면 좋았겠지만 그런 시절도 아니었으리라 보면 북이나 장구, 꽹과리, 피리, 퉁소, 나팔 등을 중심으로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전임 사또가 음악이나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많아서 웅장한 국악공연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7.7.23.일 저녁 강릉 동헌에서는 강릉부사 납시오.”라는 마당극이 많은 시민들과 함께 거창하게 열렸다. 사전에 플랭카드를 통하여 인지하고 있었던바 저녁을 먹고 이내 강릉 동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 며칠사이에는 엄청 더웠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야외공연이라 날씨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데 우중이라 염려가 많이 되었다. 관람을 하러 온 사람도 직접 연기를 하는 사람도 스텝진들 모두 날씨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연기자 분들의 노고가 좀 더 많았을 것 같았다.

 

  우중이라 생각보다는 많은 인원들이 모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덕분에 관람을 하러 온 사람들은 좀 헐렁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지 않았나 싶었다. 공연비용은 평창문화올림픽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관계로 무료로 진행되었다. 잠시나마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때 비용을 들인다 하여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대적인 홍보가 안 되어서인지 아니면 궂은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또의 부임에 많은 축하객들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시간상으로는 해질 무렵이 되었을 것이다. 사또가 입장하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하여 국악 공연이 진행되었다. , 피리, 퉁소, 아쟁, 가야금으로 이루어진 국악공연은 부슬부슬 비오는 강릉 동헌을 잠시나마 과거의 시계로 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요를 불러 줄 국악가수도 동헌 처마 밑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또가 입장하면서 사회는 자연스럽게 이 방역을 맡은 사람이 진행하였다. 백말은 아니라도 일반 비루한 말이라도 타고 왔으면 좋았을 터인데 걸어오는 것에서 격이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입장한 후 이방의 역할은 역사 사또에 대한 아부로부터 출발이 되었다. 힘들게 부임한 사또를 축하공연을 거창하게 하겠다고 사또에게 말을 했으나 점잖은 사또는 민생이 어려운데 이렇게 축하공연을 해도 되겠나고 꼬집었으나 결국 공연을 거하게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사또 역시 인간인지라 골 아픈 업무보다는 공연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민요를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우중에 동헌 마당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였다. 이어서 농악공연이 있었다. 역시 농경사회였던 만큼 일정 수준의 농악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있었으리라 본다. 농악이 끝나고 관노가면극이 진행되었다. 모든 장이 다 소개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양반광대와 소매각시가 출연하여 강릉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 땀을 흘렸다.

 

  마지막 공연은 축하연이 끝날 무렵 어떤 아낙의 민원이 발생되어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이 강릉으로 사업차 왔는데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사또에게 찾아달라는 청을 하게 된다. 사또는 그녀의 남편 이름부터 물어보는데 그놈의 이름이 특이하였으니 성은 이요 이름은을놈이라 아뢴다. 옆에 있던 호위병이 일전에 그런 자가 기생집에서 술 먹고 여자를 집적거리다 잡혀온 자가 있는데 그 자의 이름이 그 아낙이 이야기 했던 남편의 이름과 일치한다고 하였다. 당장 붙잡아 사또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 아낙은 남편이 가정을 팽개치고 엉뚱한 짓거리나 한다고 엄하게 다스려 달라고 고한다. 옆에 있던 그의 남편은 마누라가 한 이야기에 대하여 변명을 그럴싸하면서 능청스럽게 둘러댄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사또는 가정을 팽개치고 조강지처를 괴롭힌 남편에게 곤장 200대를 치라고 한다. 이때 재미있었던 게 연기자가 곤장을 친 것이 아니라 관 객중에 그럴싸한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 연기를 시켰다. 관객과 배우가 일체되어 극이 이어지게끔 구성되어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낙이 성이 덜 풀린 것처럼 이야기 하자 이번에는 사또가 곤장을 치는 사람에게 엎드려 있던 그 아낙의 남편을 뒤집어 놓고 곤장을 400대를 치라고 한다. 이 장면을 본 아낙은 기겁을 하면서 잘못했다고 사또에게 싹싹 빌었다. 자신의 남편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이때 사또는 못이기는 척 아낙의 말을 듣고 곤장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엉덩이를 치는 곤장은 많이 들어봤지만 뒤집어 면상이 하늘로 가게 해 놓고 치는 곤장은 처음 접하는지라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곤장 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막이 내려졌다. 야외무대인 관계로 막이 내려오지는 않고 배우가 일단 빠지는 것으로 막 내림을 대신하고 있었다. 출입하는 곳에서 LCD원형 청사초롱을 기념으로 하나 받아가지고 왔다. 잠시나마 과거에 관아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옛날 시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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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읽으면서 내내 미소를 짓게하는 마당극이었군요.
관객의 참여도를 높이고 극중의 대화를 좀더 발전시키면
관객과 어울리는 마당놀이로 크게 히트를 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