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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근은 접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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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근은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과 출근이란 말은 언어 표현의 불일치로 어감이 썩 좋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하나는 종말이고 하나는 시작의 개념인데 이게 한 문장으로 만들어지다보니 좀
특이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아예 “마지막 퇴근”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도 들어간다.
하기사 마지막 출근이 있으면 그 날엔 마지막 퇴근도 덧붙여 가게 됨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마지막 출근은 흔히 경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직장에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 둘 때엔 그 직장의 상황으로 봤을 땐 마지막 출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는 사람에겐 마지막 출근이 자주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그런 사람에게는 마지막 출근이 곧 다음에 처음 출근으로 이어질 수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나의 경우, 첫 출근은 1984년 9월1일이었다.
아마 그날은 가을의 첫 머리에 들어선다는 9월의 시작 날이라 하늘도 드높고 날씨도
쾌청했으리라 본다.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도 공존하는 가운데서 출근이 이루어
졌으리라 상상해 본다.
당시에 출근 장면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면 더 좋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마지막 출근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 생각했으면 그날에 느낌이나 기분, 그리고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날에 기록이 없다보니 자연이 뜬구름 잡기 식으로 상상에 그려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실제는 있었으나 기록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상상이나 추상의 세계로 가 버린
것이다.
스마트폰 달력을 보니까 1984.9.1.이 토요일이었다.
당시에는 토요일도 근무를 했으니까 그날 첫 출근을 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구가 생긴 것을 기점으로 한다면 순간의 시간이지만 인간의 수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인생의 절반을 교육기관에서 보낸 것이다.
몇 백 년 정도의 인생이라도 그 정도로 시간을 보냈으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라
본다.
거기서 몇 십 년을 지지고 볶다보니 마지막으로 출근 하는 날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첫 출근 날에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성도 못 느꼈으리라 본다.
앞날이 창창하다고만 생각했지 그게 끝나는 날이 올 것이라곤 꿈에서도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이런 날이 이렇게 오리라 생각했으면 직장생활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미 물은 흘러갔다.
자고로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했다.
격류로 흘러갔던 졸졸졸 시냇물로 흘러갔던 가 버린 것은 마찬가지라 본다.
흘러가 버린 후에 되돌아보니까 흘러간 물이 아쉬운 것이다.
시간만 흘러갔으면 모를까 육체와 정신도 흘러가버렸다.
팔팔하던 오장육부도 흐르는 세월 앞에 흐물흐물해져버렸고, 총명하던 두뇌도
이제는 오락가락 하는 신세로 전락되었다.
왕성하게 흐를 때엔 같이 일 해 보자고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제는 같이 일
하자하면 죄다 손사래를 흔들고 있다.
똑 같은 대상이지만 과거에는 환영을 받았으나 이제는 기피의 인물로 전락이 된 것이다.
내 스스로도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버렸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다.
실제로 퇴임앓이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흐름으로서 시간만 소진되면 좋겠지만 영혼과 육체도 같이 흘러갔다는데서
아쉬움이 더 커져 버린 것이다.
마지막 출근은 허망함 그 자체일 것이다.
직장생활이 인생의 전부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는다고 본다.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알자배기 시간에 직장에 있었기에 그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간과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라 본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때가 돼서 봉급이나 타 먹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봉급 타 먹는 기계 정도의
직장생활을 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자아실현이 되었다고 인지한다면 그 직장생활을 그럭저럭 잘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것이 지나고 난 다음에 보인다면 이는 인생뒷북을 친 직장생활일지도 모른다.
옛말에 10년의 내공이면 도사가 된다고 했다.
무엇을 해도 10년 동안 정진하면 그 세계에서는 통달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저는 거의 40여년을 교직에 있었다.
도사가 되어도 4번은 되었다는 논리이다.
과연 교육계에서 도사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반문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올 것이다.
교직에서 도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는 대목이다.
내 주변에서도 교직에서 도사가 된 사람은 본 적 없다.
지나고 나면 과거에 발자국이 보인다.
첫 출근에 미래가 보였다면 마지막 출근에는 과거가 보인다.
같은 출근이지만 언제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 출근 날 알았다는 것이다.
뭣이던 지나고 나면 ‘아차!’ 하면서 후회하고 넋두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한치 앞만 내다보고 살았다면 더 멋있고 아름다운 직장생활을 했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지나갔다.
그 결과 지난날의 공과(功過)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는 허상으로 출근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의 업데이트를 소홀히 한 다음 새로 난 도로를 달려보면 허상의
도로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출근 같지도 않은 출근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냥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출근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출근이 아닌 그냥 외출인 것이다.
마지막 출근은 멋있게 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멋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마음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런데 그 마음에 멋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서 멋을 찾게 된다.
첫 출근 때엔 아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갔을 것이다.
그것은 멋이 될 수 도 있을 것이고 예의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출근에도 아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가야 할 것 같다.
마음에 멋을 잘 가꾸지 못한 터에 외관상 멋이라고 좀 내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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