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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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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봉급
교직은 17일이 봉급날이다.
오랫동안 교직에 있다 보니 기다려지는 날이 자연스럽게 17일로 못박혀 진 듯싶다.
이날로 인하여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날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귀중한 날은 그날이 아니라 다른 날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7일을 신성시하면서
세월을 까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제때 꼬박꼬박 나오는 봉급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제한받으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때 되면 알아서 나오는 봉급이 있는데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때 되면 굶어 죽지 않으리만큼 나오는 봉급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소시민으로 전락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봉급을 타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모를 애환도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다르게 본다는 것도 알고 있다.
때 되면 봉급이 나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 많으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봉급을 주는 사람에 비해서는 정신적인 건강은 훨씬 더 양호하다는 것이다.
제때 봉급을 주지 못하여 힘들어하는 오너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충분히 수긍할 만 한
일이라 본다.
저는 오늘부로 교직에서 마지막 봉급을 받게 됩니다.
교직에 몸담은 지 엊그제 같은데 많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 그 직도 내려놓게 됩니다.
그간 많은 봉급을 받았는데 첫 봉급과 마지막 봉급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첫 봉급을 받았을 때 급료가 25만 원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에는 1년에 4번의 보너스가 있었는데 첫 봉급에 보너스가 있던 달이어서 그렇게 많이
받았었습니다.
당시에 그 정도 받고 나니 다른 직장에 비해서 크게 적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절에는 봉급도 거기에 준해서 팍팍 올라갔었습니다.
일하는 재미가 아니라 봉급 올라가는 재미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호봉제 봉급의 특징은 그 호봉이 올라가면 갈수록 몇 푼이라도 돈이 더 찍힌다는 것이죠.
요는 어느 정도까지는 봉급 수령액이 많아짐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으나 퇴직 몇 년 전부터
정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봉급에서 떼는 세금은 누진제로 이루어졌지요.
봉급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금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수령액은 정체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구조로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봉급 덕분에 지금까지 입에 풀칠하면서 살았습니다.
봉급이 신통치 않았다면 다른 길로 갔겠지요.
잠재적으로 만족을 했다는 것이죠.
아니면 달리해 봐야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눌어붙어 앉았다는 것도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길로 가지 않을 정도로 봉급을 교묘하게 올려준 것 같은 느낌도
들어갑니다.
마지막 봉급을 탄다고 생각하니 감회와 아쉬움이 교차됩니다.
주어진 일생의 시간에 절반 정도를 봉급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그 줄이 끊긴다고 생각하니
이제부터 퇴물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봉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한 번 찾아오는 현상일 것입니다.
공무원에게는 퇴직 후 연금이 나오는 관계로 급료의 단절은 없습니다만 명칭 자체가 달라지
면서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 저도 생산성이 있던 위치에서 소모성의 인간 군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버는 데 치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쓰는데 신경을 좀 더 써야 할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마음에 준비는 되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앞이 좀 어둡고 침침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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