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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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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
나이가 들수록 옛말에서 나오는 심오한 정취가 실감난다.
젊은 날엔 선현들의 이야기가 한 낫 스처가는 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도 귀담아 들었던 것은 가끔 가다가 시험문제에 출제되곤 했기에 관심의 강도가
조금은 높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진솔한 맛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데는 소홀했다고 본다.
결국, 내 가슴속에 와 닿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제목과 같이 “임시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라고 이야기 해 주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를 하냐는 반응이 나오리라 본다.
곶감에 대한 의미나 향수가 없다보니 그 단어에 대하여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현대판으로 풀어서 쓴다면 “임시 먹기엔 초콜릿이 최고다.”정도로 이야기 하면 젊은
사람들도 조금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곶감은 우리 조상들이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단 것으로 자리매김 되었을 것이다.
구한 말 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설탕이란 식품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보니 단 음식의 결정판은 자연스럽게 곶감으로 옮겨 갈 수 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힘들면 원초적으로 단 것을 찾게 돼 있다.
먹으면 이내 힘이 날 수 있음으로 몸이 단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곶감 이외에도 단 음식이 있긴 있었다.
대추도 있었고, 감주(식혜)도 있었고, 조청이나 엿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음식들은 곶감처럼 용이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에
곶감을 전면에 내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은 임시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표현을 했을까 하는
연유가 궁금해 질 것이다.
여기에는 ‘임시’라는 전제조건을 깔아 놓았다.
그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했으면 당연지사라 생각될 터인데 앞에다 굳이 ‘임시’라는
명사를 붙여 놓았을까 에 대하여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일단은 곶감이라는 음식은 주식으로 이용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곶감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본 것이다.
그 순간을 넘기는데 필요한 음식의 대명사가 곶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에 사탕이나 과자부스러기 같이 생각하면 금세 답이 나오리라 본다.
커 나가는 아이들에게 과자나 사탕과 함께 밥을 제공해 주었다고 보자.
그 아이들이 어디에 먼저 손이 가겠는가?
특별한 아이가 아닌 한 과자나 사탕에 먼저 손이 갈 것이다.
그야말로 임시 먹기에는 밥보다 그게 더 선호되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곶감이 단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하지만 그 음식만으로 식생활에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들여다 본 것이다.
인간의 말초적인 미각적 유혹을 곶감에다 비유해서 표현해 놓은 문장이라
보면 될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임시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라는 이야기는 불변의
진리로 남을 것이다.
너무 달콤한 맛에만 빠지지 않고 살아가라는 경종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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