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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깎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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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깎으면서
내게는 감자에도 많은 추억이 묻어 있다.
그깟 반찬 재료의 한 종류에 불과한 감자에서 무슨 얼어빠질 추억이 담겨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반문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추억 나올 구멍이 그렇게도 없냐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 감자는 많은 추억을 남겨 준
대표적 식품이라 본다.
저는 논이 별로 없는 산골에서 자랐다.
우리 민족의 주식이 되어 버린 쌀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곳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넓은 밭을 가진 지주의 아들이 아니다보니 먹거리조차 늘 궁핍한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처럼 라면이니 빵쪼가리, 과자 부스러기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던 관계로 삼시 세끼 이외에
간식이라곤 산딸기, 찔레 새순, 솔가지 새순, 산 새알 뒤져 먹기, 구덩감자, 학산 꽤, 생 무,
생고구마 따위가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벼농사를 하지 않다보니 주식이었던 밥은 보리나 좁쌀이 기본이 되면서 강냉이나 청밀(호밀)이
그 뒤를 받쳐주었다.
여름철엔 감자가 대타가 되었으며 가을철엔 고구마가 그 뒤를 이어주었다.
그런 음식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시절도 부지기수로 있었다.
도시락이라도 쌀라치면 쌀을 밥솥 귀퉁이에 넣은 후 밥 풀 때 흩어지지 않게 조절하여 쌌던
시절도 있었다.
내 자신만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고, 주변에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살았었다.
감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거기에 대한 추억도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감자는 하지 무렵에 첸센을 하여 지금쯤 한 창 수확을 하게 되는 작물이다.
농업책에서 말하는 구황작물(그게 없으면 죄다 굶어 죽을 것을 막아 주는 식량작물로 감자나
고구마를 일컫는다.)인 셈이다.
그런데 이 감자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는 먹기가 좀 어려운 먹거리이다.
물론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찐 다음 된장 같은데 찍어 먹는 방법의 피감자라고 있긴 있다.
지금처럼 농사법이나 비료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감자알이 쥐방울처럼 작았다.
껍질을 깎아 내다보면 먹을 살이 죄다 벗겨져 나감으로 그걸 방지하기 위하여 껍질째 찐 다음
벗겨서 양념간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었다.
특히 하지를 막 지나서 캐 낸 햇감자를 피감자 식으로 쪄놓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얕은 맛이 난다.
거기에 오이 냉국이라도 곁들이면 그야말로 황제식의 식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야들야들하던 감자도 날씨가 무더워 지면서 껍질이 딱딱해지면서 깎지 않으면 먹기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칼로 깎거나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어내야 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소가족이 아닌 대가족 제도였던 차에다 자식들도 줄줄이 사탕식으로 낳은
터에 식구들이 많았다.
저 같은 경우도 6명의 가족이 살았음으로 한끼 밥을 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감자의 량도
만만찮았다.
부모님은 하루 종일 밭일에 정신이 없었음으로 하교 후 하는 일은 소 풀베기와 감자깎기가
주가 되었다.
나와 터울이 그리 길지 않은 바로 밑에 동생은 하교 후 협업으로 감자 깎기에 투입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감자를 깎아 놓아야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감자 깎기를 하다 보니 다른 것은 몰라도 감자 깎는 기술만큼은 달인의
경지까지 갔었다고 본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저는 과일을 깎아도 애 엄마보다 훨씬 더 얇고 정교하게 깎는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과일 깎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할 때도 많이
있었다.
그게 다 왕년에 감자 깎기에서 터득한 내공의 결과라 본다.
그게 자랑거리인지 아니면 촌놈이었다는 방증의 자료인지는 모르지만 어렸던 시절에
숙명적으로 거쳤던 경험이 추억으로 변환된 것이다.
감자를 깎는 칼이 망가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숟가락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지금처럼 쇠의 재질이 아니 놋숟가락이 주종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주구장창 숟가락으로 감자의 껍질을 긁어내다보면 감자와 닿는 부분에 숟가락 잎사귀가
슬슬 파먹어 들어간다.
마치 보름달에서 하현으로 가는 단계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걸 지금까지 보관해 두었다면 훌륭한 민속자료가 되었겠지만 쇠숟가락이 다량으로 나오
면서 상대적으로 고철 값이 비쌌던 놋숟가락을 엿장수에 팔아 엿 바꿔먹었으리라 본다.
철없던 시절에는 뭐가 귀하고 가치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당장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달콤한 엿이 최고의 가치를 발휘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철이 빨리 들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도 순진하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숙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만고 쓰잘데기 없는 상상이지만 당시에도 눈이 먼저 띈 자는 그런 것을 가지고 훌륭한 자산으
로 승화시킨 사람도 간혹 있었다는 것이다.
모처럼 감자가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감자를 깎았다.
전에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어갔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옛날에 했던 일들이 점점 더 생생하게
추억으로 떠오른다.
이게 진정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인생의 결과물은 추억이라 했다.
아름다웠던 일이건 험악하고 어려웠던 일이건 간에 지나가면 추억이라는 포장지에 쌓이게 된다.
감자 깎는 일 조차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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