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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떨어진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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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떨어진 갓
팥 앙금 없는 찐빵,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스프 없는 라면, 관중 없는 콘서트, 자금줄 끊어진 기업,
전기 없는 곳에 텔레비전, 술 없는 파티 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중요한 도구가 있으면 그 도구를 빛내 줄 부수적인 부속품이나 조성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하여도 그 좋은 것을 좋게 영위하기 위하여 주변에서 도와주어야 할 그 무엇이
있을 때 가치가 빛나리라 본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썼던 모자가 갓이었다.
아무개나 쓸 수 없었기에 갓의 귀함이 더 컸을는지 모른다.
주로 양반계층에서 썼으며 관청에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갓을 만드는 데는 여간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갓의 재료는 말총, 돼지털, 대나무가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엮어서 만들어야 함으로 그걸 만드는 시간이나 노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그렇게 귀한 모자였기에 그냥 적당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갓집에 넣어서 보관했
다고 한다.
갓에 딸린 것으로는 갓끈· 갓양태· 갓집 등이 있다.
갓끈은 갓에 달린 끈으로 헝겊을 접거나, 나무· 대· 대모· 산호· 수정· 유리· 호박 등을 꿰어
만드는데, 직위에 따라서 재료가 달랐다.
물론 재산이 있는 자는 비싼 재료를 가지고 끈을 만들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갓끈의 모양과 재료만 가지고도 신분을 알 수 있었으며, 법령으로 이를 정하여 시행했던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갓은 한국의 모자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투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에 갓 만큼 그것을 받쳐줄 모자도 없었으리라 본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의 메인 홀은 갓을 상징화하여 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건물 자체가 갓 모양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갓을 마치 저승사자의 역할을 하는 연기자의 전용물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건 좀 잘못된
사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 갓을 보고 감탄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독창적인 모자가 있다는 것 자체에 감동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갓에 관한 고사로는 그 유명한 絶纓之會가 있다.
그냥 풀어서 말한다면 “갓끈을 끊고 연회를 베푼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중국 초나라 시절에 장왕이라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신하들과 연회를 베푸는데 갑자기 연회장에 불이 꺼진 것이다.
그 틈을 타 장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왕이 총애하는 애첩을 껴안고 희롱을 하였다.
그 애첩이 잽싸게 그 신하의 갓 끈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희롱한 자의 갓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애첩이 장왕에게 일러바쳤다.
누군가가 어둠을 틈타서 자신을 희롱했다고 말하면서, 그 자의 갓끈을 잡아 당겨 끊어버렸다고
말하자 장왕은 연회에 나온 신하들에게 지금부터 모두 갓끈을 끊고 연회를 즐길 것을 명하였다.
몇 년 후 전쟁이 났는데 어떤 신하가 자신의 목숨을 불살을 정도로 전쟁터를 누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장왕의 애첩을 희롱했던 신하였다고 한다.
갓의 외형도 중요하지만 끈은 그 갓이 머리에 붙어 있도록 붙잡아 매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판 서양모자들은 거의 끈 없이 머리에 그냥 밀착되도록 만들어졌지만 갓 만큼은
구조적으로 끈 없이는 쓸 수 없게끔 되어 있다.
그야말로 끈 없는 갓은 어디가도 써 먹을 수 없는 물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본 갓 틀이 아무리 우아하다고 해도 끈 없는 것은 사용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갓 쓰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갓은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늘 같이 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만큼 갓은 우리 전통문화에 상징이었고 그 상징이 DNA로 고착되었는지도 모른다.
갓을 써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도 갓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수긍할 정도로 우리와 갓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끈 떨어진 갓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흐른다.
뭔가 능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개털 같은 인생으로 전락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경우 정년이 되어 회사나 직장을 나오게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특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권한이 소멸되는 순간에 상황을 갓끈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하는 수도 있다.
저도 갓 끈 떨어질 날 얼마 안 남았습니다.
남 갓끈 떨어지는 것은 많이 봐 왔지만 내 갓끈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과 염려가
좀 됩니다.
어차피 한 번은 떨어져야 될 일이지만 그게 내게 왔다는 것 자체가 별로 소망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갓 자체도 필요 없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물리적 나이에 의해서 갓이 벗겨지는 현실의 중심에 본인이 서 있다고 생각하니
남다른 감회도 떠오릅니다.
갓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에 던져질 날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그 갓에 귀함이
이제야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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