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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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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면서 육체와 영혼을 한 곳에다 넣어 놓았다.
영혼이 육체를 리드하게 세팅을 해 놓은 것 같다.
아무리 육체가 버둥거려도 영혼의 지배를 받지 않고는 특별한 일 이외에는 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단, 영혼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해 놓은 영역은 갑작스럽게 충격이 왔을 때 영혼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육체가 그냥 반응하도록 해 놓은 것도 특이한 점이라 본다.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정신을 잃는 현상, 뜨거운 물이나 불이 갑자기 신체에 닿았을 때 반응하는
현상, 긴급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초월철학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조상들의 연애사는 별로 로멘틱하지 않았다는 것을 연애 역사를 통하여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지방에 유명한 여류시인이었던 허난설헌도 결혼할 때 배우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집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허난설헌은 꼭 자신과 결혼할 사람의 얼굴을 보고자 양부모에게 간청을 했으나 당시에
풍습과 관행상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는 설도 전해오고 있다.
당시에는 부모가 맺어주면 결혼식 날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첫날밤을 맞이하면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 와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말이 잘 되었던 방식이었다고 본다.
서양에서는 어땠을까?
서양에서는 연애를 “love, relationship, dating, romance”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냥 연애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만 봐도
우리보다 훨씬 더 리얼하게 연애라는 과정을 거쳤음을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연애라는 것도 어찌 보면 서양에서 들어온 문화의 한 장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유교사상에 쩔어있다 보니 그런 연애 같은 것을 하면 ‘상것'들이 하는 불장난 정도로
전락을 시켜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연애를 하자면 7세부터 동석이 되어야 하는데 철들기 바쁘게 부동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걸
할 기회조차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다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데서 어떻게 멋있는 연애가 이루어지겠는가.
그렇게 엄격한 유교문화에서도 연애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춘향전’에서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을 윤리나 도덕같이 다른 도구로 억압하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육체와 영혼이 특이하게 반응하도록 해 놓은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애할 때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는 경우는 동성애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흔히
발생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가지고 싶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세팅되어졌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개중에는 이성에 별 관심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희귀한 사례라
보면 될 것이다.
연애는 지극한 감정의 교류과정이라 본다.
정신과 육체가 절묘하게 교류하는 과정으로 이를 통하여 결국은 종족보전의 기능을 가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인간세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연애는 아니지만 번식기가 되면 암컷과 수컷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는 인간처럼 고도의 이상이 발동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지극히 본능적인
방향에서 그런 현상이 발생된다.
동물의 경우 번식기에 발정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때가 되면 성호르몬이 나오면서
상대성을 유인하여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의 본능에다 이성까지 겹쳐지면서 동물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이성을
찾게 된다.
소위말해 연애라는 과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연애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성만 만나면 죄다 그런 감정이 생기는가?
만나는 이성마다 다 연애감정이 생긴다면 정신건강에 혼란을 줄 수 도 있을 것이나 현실적
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이 아닐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연애감정이 발로될 것인가.
이성에게 끌리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간의 용어를 빌린다면 “제 눈에 안경, 눈에 콩깍지가 씌는 현상, 첫 눈에 반한 사람, 눈망울
등 신체의 특정부위에 반한 사람” 따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뭔가 상대방에게 반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 본다.
어떤 경우는 직업상 자주 만나다 보니까 정이 들면서 연애 과정으로 옮아갔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케이스도 상대방에게 끌리는 뭔가의 매력 포인트가 있었다고 본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훤칠한 키, 살살 녹는 듯 한 언어표현, 이상적인 몸매, 아름다운 머릿결, 가문, 경제력, 미래에
대한 비전, 잘생긴 얼굴, 적당한 나이, 의지하고 싶은 욕망, 튼튼한 육체, 학력이나 학벌, 그만이
가지는 주특기 따위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요소가 어우러져 상대방을 종합적으로 보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한두 가지의 요소에 반해서 연애감정이 솟아 날 수 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반응하는 것이 다 다른 만큼 어떤 것에서 가장 강력하게 필이 꽂힌다고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성에게 더 큰 호감과 관심을 가지게 할 것인가도 연애를 해야 할
사람이라면 신경을 써야 할 영역이라 본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닌 천사의 반열에 올라가야 할 사람일 것이다.
자고로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연애의 상대방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내 애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매력적인 상대방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지만 연애를 좀 더 의미 있게 할 것인가를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성장과 배경이 다른 인간과 인간이 만났는데 모든 것이 다 일치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하지만 연애는 싸우는 과정이 아니, 좋은 감정을 이입시키는 과정임으로 매사를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렴을 해야지만 목적달성이 쉬워지리라 본다.
어차피 연애단계는 무엇이든지 상대방에게 잘 보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내 고집대로 튕기다 보면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가리라 본다.
파열음이 생기면서 연애고 뭣이고 그냥 파토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변해버린다.
적어도 연애가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맛에 맞춰줄 수 있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입맛이라는 것도 한 두 개가 아니라 너무 다양하게 펼쳐져 있기에 그런 대상이 현실에
왔을 때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연애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연애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상대방의 허파에다 바람 넣기”라 해도 될 성싶다.
좀 과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매력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허파에도 과하게 바람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매파가 양가를 쫒아 다니면서 바람을 넣었지만 이 시대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처럼 밋밋하면 연애 자체의 묘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길 그렇게 해 놓았기에 그런 방향으로 가면 의미 있는 연애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자 얼굴에 난 털,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꿩의 날개, 우아한 공작 깃과 같이 인간에게도
개개인 마다 보이지 않은 특별한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 매력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 요소를 크게 부각시켜 상대방에 어필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나 작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를 잘 하는 것도 인생을 엮어가는 데 크나큰 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잘 만나면 출세(온달 장군)도 할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디딤돌도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사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는 법, 그와 반대의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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