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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07-11 06:53 댓글 0건 조회 5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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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會食

 

 

산다는 것은 곧 먹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먹는 것이 곧 인생의 시작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죽음은 곧 곡기를 끊는다는 말과 상통하리라 본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먹거리인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음으로서 우리 생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옛날에 회식은 집에서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가지고 회식 장에서 sip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을 그야말로 미식 전용 회식이 아닌 이상 그런 목적으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본다.

 

밥을 가지고 업무를 엮어가는 행위를 가지고 우리는 회식이라 칭한다.

그냥, 지인끼리 밥 먹으러 가는 것은 그냥 밥 먹으러 가는 행위라 보면 될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직장에서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밥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라 본다.

지난 코로나 정국에서는 회식문화가 잠시 주춤했으나 그게 걷히고 난 다음부터 이 문화가 다시

 소생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저도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회식문화에 젖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말로 밥을 먹는 직업은 그 일이 끝난 다음 목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걸 푸는 방법 중 하나가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다.

직장마다 애환이 다 다름으로서 그걸 직장 내에서 푸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조직이나 직장이 더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이런 문화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회식을 한다고 해서 다 그런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필을 들고 말로서 용역을 달성하는 집단에서는 목을 풀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식단을

 정할 것이고, 분진을 많이 접하는 직장에서는 그걸 해소해 줄 수 있는 쪽으로 나갈 것이다.

힘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에서는 힘나는 음식으로, 머리를 굴려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 머리가 

더 예리하게 움직여질 수 있는 음식으로 회식을 하리라 본다.

 

국민소득이 낮았던 예전에는 뭣을 먹어도 만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회식을 한다면 집에서 먹는 식단보다야 좀 더 럭셔리했던 시절이라 싫어할 이유도 없이 죄다

 참석을 했다.

하지 않으면 안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듯 한 인상을 받던 시절이었었다.

회식의 식단은 과거보다 엄청 다양해져있다.

회식비의 많고 적음, 연령대, 남녀, 조직구성원의 성향, 지역성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되리라 본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에는 뭣을 먹으러 가도 만족했다.

회식에 참석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맨 밑에 것이 해결되면 그 위에 것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냥 하루 저녁에 민생고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회식은 호평받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나이가 좀 든 세대에서는 회식이 있으면 가타부타를 떠나서 거의 본능적으로 참석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과거의 군사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그때그때 상황을 보고 참석여부를 본인들이 결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제대로 된 회식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 공통 음식인 백반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너무 밋밋하다고 인식되면서 좀 더 특별한 

매뉴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질 것이다.

회식하러 가는 층이 어떻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리라 본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도 메뉴를 결정하는데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것을 다 따지다보면 갈 곳은 한정적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회식을 하는 공간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몇 십 명이 참가하는 경우에 공간이 협소한 곳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된다.

음식의 맛이나 메뉴의 종류와 관계없이 많은 인원수가 참가할 경우에는 그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부터 먼저 결정하게 된다.

음식을 먹으러 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메뉴선택권이 회식 인원에 따라서 변하는 결정적

 요소라 보면 될 것이다.

 

회식비 또한 만만찮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공통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하여도 비용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 또한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리비히의 법칙처럼 가장 취약한 부분을 초월하여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좀 우아한 음식을 먹고 싶어도 돈이 적다면 결국은 그 돈에 맞추어서 회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멋있는 식당에서 최고급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겠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회식은 꼭 필요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않을 수 없다.

그 답을 코로나 시대가 어느 정도 해 주었다고 본다.

그 때 회식이란 문화가 거의 실종이 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직장이던 단체건 간에 모여서 밥 먹는 일이 안됨으로서 나타난 풍속도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을 대상으로 인간관계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디딤돌 

하나가 빠졌던 것이다.

물론 회식이 없다고 해서 당시에 사회질서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이 정착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회식의 문화의 결이 달라지면서 혼돈되었던 상황도 있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회식은 어떤 여운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여 들여다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특정인이 한 턱 내는 경우, 회사의 예산으로 또 어떤 때에는 자기 닭 자기 잡아먹듯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회식을 하고 난 다음에 인간관계가 잘 이루어져 회사나 조직이 더 매끄럽게 굴러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한 턱 내는 사람이 스스로의 목적을 성취하였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긍정적 메시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회식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다.

 

 

 

회식 후 그 여운을 달래기 위하여 2차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배가 부르면 그 다음 단계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호프집이나 노래방, 아니면 카페로 가는 것이 보통의 순서일 것이다.

그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왕이면 좋은 분위기를 좀 더 연장시켜 보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말도 있다.

파티가 길어지면 피로도(숙취)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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