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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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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산골에 해가 떨어지면 먼저 어두워지는 법, 개천을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오대산
들어가는데 있는 이름과 유사한 켄싱턴 리조트가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다 보니 쌍계사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저녁 늦은 절간이라 입장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주차장에 와 보니 의외로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차를 세워 놓고 일주문을 지나 직선으로 뻗은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니 대웅전이 나타났다.
이렇게 심오산중에 큰 절이 있다는 것도 신통할 정도이다.
이름하여 쌍계사라 칭하였는데 이 절의 원래 이름은 구슬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옥천사라 명했는데
그 이후 국가에서 쌍계사란 사명을 내렸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이 절의 이름이 쌍계사로 된 것은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흐름으로 그걸 차용해서
雙磎寺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도 해 본다.
천년고찰답게 웅장하면서 옛 멋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듯 했으며 주변의 경관도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옛날 고승들이 이렇게 풍수가 좋은 곳을 어떻게 찾아서 절을 세웠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드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가 발달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심오산중에 이렇게 명당자리를
찾아낸 다음 절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불력이 아니면 도저히 해 낼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간다.
쌍계사 탐방을 다 하지는 못 했지만, 그 자태나 위용은 타 사찰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이렇게 웅대한 절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갈 길이 바쁜지라 쌍계사 겉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화계장터 탐방으로 방향을 바꿨다.
섬진강 자락에서 갈라진 지류를 따라 올라가는 입구에 화개장터가 있었던 것 같다.
쌍계사로 갔던 길로 다시 뒤돌아 가는 길이다.
올라갈 때 보이지 않았던 모습은 주변에 팬션같은데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산중 계곡에 산재해 있는 팬션이나 숙박시설에 불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떤 곳에 어떤 숙박
시설이 있는지 먼저 알 수 있었다.
해가 진 다음이라 눈이 부시지 않아 운전하기에는 조금 편해졌다.
대신 잘 보이지 않아 그게 흠이라면 흠이고, 주변에 랜드마크가 사라지는 바람에 초행길에 운전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한참 계곡을 타고 내려와 섬진강 자락에 도착했는가 싶었는데 화개장터라는 팻말이 보인다.
말로만 듣고 노래로만 듣던 화개장터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느낌을 받았다.
장터라기보다 관광지 겸 장터로 자리매김 되는 것 같았다.
노랫말에도 나오듯 섬진강을 기준으로 화개장터 반대쪽은 전라남도인 관계로 두 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장터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물론 전라도에서 장을 보기 위하여 섬진강을 건너야 됨으로 자연스럽게 뱃길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교류할 수 있는 교량들이 많이 있어서 뱃길로 다니는 위험은 없어졌지만, 강 건너편 마을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의 애환도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온 김에 화개장터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았고 식당 정도만 문을 열고 있었다.
입구에 한 나물 가게 주인이 겨우살이 삶은 차를 한 잔 주길래 넙죽 받아 마셨다.
공짜로 얻어먹고 난 다음 그냥 오기가 뭣해서 지리산 특산의 고사리 만 원짜리를 한 봉지 사 가지고
왔다.
강원도 고사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훗날 볶아 먹어 보고 비교할 계획이다.
그야말로 시간이 없어서 화개장터 구석구석 훑어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날은 어둑어둑 해 지고, 숙소도 잡지 못한지라 이제부터 잠 잘 곳을 찾고 난 다음 저녁 얻어먹을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차 머리를 다시 하동 시내로 돌렸다.
오던 길로 다시 가는 터이라 길이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다.
숙소는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오면서 섬진강 자락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점에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바라보고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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