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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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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食
오늘은 한식이다.
한식은 중국에서 유래된 절기 문화로 동지가 지난 다음 105일째 되는 날로 정해졌다.
한식을 한자로 들여다보면 寒食으로 표기되며 글자상 의미는 ‘찰 한자’에 ‘밥 식자’이다.
직역을 한다면 찬밥(식은 밥)을 먹는 날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날은 찬밥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연유가 궁금해지리라 본다.
찬밥을 먹게 된 이유는 중국 진나라 시대에 재 개자추라는 신하로부터 유래된다고 한다.
당시에 진나라에 문공이라는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왕이 어려울 때 개자추가
자신의 몸을 해쳐가면서 충성을 다했다고 한다.
나라가 안정되면서 개자추는 잊혀진 인물이 되었는데 어느 날 문공이 자신의 과거에 큰
도움을 주었던 개자추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를 찾아오게 했다.
그런데 개자추는 당시에 노모를 모시고 산시성 지에시우현의 면산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신하들이 개자추를 찾아 헤맸으나 그 험한 산천에 개자추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해서 생각해 낸 것이 그 산에 불을 놓으면 개자추가 불길을 피해 산에서 내려올 것이라 생각
하고 불을 질러버렸다.
결국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불타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문공은 개자추를 추념하기 위하여 그날은 불을 가하지 않은 음식을 먹도록
명한 것이 지금까지 풍속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서 파생된 음식으로 밥 대신 면으로 변화시켜 한식면도 나왔다고 한다.
한식에 관련된 특이한 속담도 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것으로 대동소이함을 나타낼 때 썼던 것 같다.
실은 청명이 지난 다음날에 한식이 오기 때문에 하루를 더 산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일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청명이 나온 김에 이 명절의 의미는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들어있으며 “천지가
맑은 공기로 가득 찬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식 무렵에 나무를 심는 풍속도 있었다.
실제로 한식 무렵이 식목일과 나란히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냥 나무를 심는 것보다 의미 있는 식목이 되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집어넣었다.
그 시기에 아들을 낳으면 산소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고 딸을 낳으면 밭가에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산소는 조상을 봉양하는 의미에서 대를 잇는 아들의 몫으로 생각하였고, 딸은 시집을
보내야 하는 터에 장롱을 만들 수 있는 오동나무를 심었으리라 상상을 해 본다.
청명, 한식에 사초를 해도 탈이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옛날에는 조상을 신처럼 모셨던 시절이 있었다.
함부로 조상의 유택을 건드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 여겼던 터이라 사초도 아무
때나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단, 청명이나 한식 무렵에는 한시적으로 풀어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묘 주변에 나무 정리도 해야 하고, 잔디가 훼손된 부분은 뗏장도 입혀야 하고, 겨우내
허물어졌던 묘역도 정리를 해야 하게 된다.
그런 작업을 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때가 바로 청명과 한식 무렵이라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도 많은 경험을 통하여 사초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를 알아 낸 것이다.
청명과 한식 무렵이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바쁜 시기로 들어가는 신호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때 사초를 하지 않으면 농사일과 겹쳐지면서 1년 농작업 과정이 헝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청명과 한식은 열일을 제쳐놓고 조상의 유택을 손보는 날로 자리매김 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하면서 예전에 아름다웠던 전통과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로켓을 타고 달나라와 별나라를 가는 판국이라 하지만 조상 없는 후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본다.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 던져지고 보니 이런 문화를 어떻게 재 정립시켜야 할는지에
대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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