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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길을 묻다 193- 『내가 살아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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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돈을 안버니 하루 두끼만 먹고 사네.”
“그런가? 그럼 갈 때 엊그제 찧은 햅쌀 한 포대 줄테니 가지고 가게."
(중략)
"그런데 웬 닭갈비인가?”
“요즈음 같은 세상에 배달도 안되는 시골에 사는 놈을 위해 닭갈비 배달 왔네.”
팬데믹으로 1년 반만에 만난 도회친구와 귀농하여 농삿일을 하는 친구가 마치 남도 판소리하듯 주거니 받거니 나눈 대화다.
이 풍진 세상에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하루 두 끼만 먹고사는 사람이 있을까. 여름 내 비지땀 흘리며 지은 쌀 한 포대 값이라야 재난 지원금 카드로 쉽게 사 온 닭갈비 한셑트 값과 거기서 거기인걸...
정담을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 햅쌀 한포대와 호박 몇개 넝큼 트렁크에 실어주며 하는 친구의 말이 걸작이다.
”이제부터는 삼시세끼 꼭 챙겨먹고 쌀 떨어지면 또 오게나. 다음에 올 때는 두끼만 먹고 사는 주제니 닭갈비 말고 계란이나 한판 사와“
”이 사람아 계란값이 천정부지인데 비싼 그걸 어떻게 사오나. 다음에도 닭갈비야!“
“아 참, 어찌 밥만 먹고 사는가 반찬도 해 먹어야지. 호박도 몇 개 가지고 가게.“
”호박? 좋지, 그런데 호박요리에는 대파가 들어가야 제맛인데...”
“어이쿠 당했다, 그렇찮아 대파도 준비해 뒀는데 깜빡했네.”
유독 더웠던 여름, 익숙치 않은 농삿일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운전을 하면서 대파 몇단에 온갖 푸성귀 까지 넉넉히 실어준 친구에게 혼잣말을 해 줬다.
”그래, 니 같은 놈이 여직 살아 있어 내 같은 놈이 여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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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연님의 댓글
김석연 작성일
친구분과의 훈훈한 이야기에 동지섣달 설한풍이 녹습니다.
소한지나 대한이 낼 모레인데 봄풀이 솟기전에 기지개를 펴 볼까 하네요.
곁에 마음 따뜻한 동문분이 있어서 모교 홈페이지를 자주 열어봅니다
혹시나 오늘 기분좋게 하는 글을 올리지나 않았는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