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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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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
바야흐로 감자수확의 계절이 다가왔다.
예전에는 하지를 기점으로 아쉬운대로 감자를 캐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왔었다.
몇 십년 전에 우리네 농촌은 살기가 힘들었다.
그것을 표현해 준 대표적인 어구가 ‘보리고개’라는 말이었다.
강원도에서는 보리고개보다는 오히려 감자고개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보리는 강원도에서 영동지방 일부를 제외하고 잘 안되는 식물이다.
자연스럽게 감자가 그 자리를 꿰찼던 것이다.
감자에 대한 사연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 사건이라 보면 될 것이다.
당시에 아일랜드에 감자역병이 돌면서 수확량이 확 줄어들면서 주식으로 감자를 주로 쓰던 사람들이 대거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감자 덕분에 인류가 이까지 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강원도는 예로부터 감자의 고장으로 잘 알려지고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는 지역색을 잘 표현 말로 경상도는 보리문뎅이, 강원도는 감자바위로 일컬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감자는 우리 강원도와 떨어질 수 없는 친근한 농작물이라 보면 될 것이다.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에만 갔다오면 감자깎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지금처럼 굵은 감자도 아니다.
당시에 농사기법이 열악하다보니 굵은 감자는 구경도 못했던 지절이었다.
칼로 깎으면 많은 살이 베에져 나감으로 할 수 없이 놋숟가락으로 긁었다.
얼마나 긁어댔는지 숟가락 잎이 푹 파일 정도였다.
한 참 깍고 나면 손 전체가 거무틔틔하게 감자 물이 들어 있었다.
하지 무렵에 수확한 감자는 숟가락으로 긁는 것이 엄청 쉬웠다.
껍질이 얇기 때문에 힘을 주지 않고 긁어도 표피가 잘 벗겨졌다.
감자와 관련된 사연과 추억은 참 많았다.
지금와 보면 추억이지 그 당시에는 지긋지긋한 삶의 한 방편이었을는지 모른다.
아니 삶 자체가 그런 것이였으니까 당연히 겪어야할 과정이었다고 본다.
지금도 당시와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다면 추억이 아니라 일상사로 점철되었을 것이라 상상을 해 본다.
잊혀져가는 감자와 관련된 추억을 더듬어 본다.
필자 여러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
@ 감자를 많이 먹었던 사람은 촌놈이었다.( X, O )
@ 감자 농사에는 많은 거름이 필요하다.( X, O )
@ 감자 눈 따기를 하고 남은 감자를 삶아 먹으면 들크네 한 맛이 난다.( X, O )
@ 감자를 심어 놓고 싹이 한 창 올라 올 때 치명적으로 줄기를 갉아먹는 해충의 대표주자는 기심이(거세미)다.( X, O )
@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에 있는 칠레나 페루 지역이다.( X, O )
@ 우리나라에 감자가 도입된 것은 조선시대 중엽무렵이다.( X, O )
@ 썩은 감자는 모아서 더 썩인다음 녹말을 만들었다 감자떡을 만들어 먹었다.( X, O )
@ 감자가 피부병처럼 부스럼이 심하게 생기게 되는 원인을 곤쟁이다.( X, O )
@ 피감자를 삶아 먹을 때 가장 좋은 쏘스는 된장이다.( X, O )
@ 감자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왔다.( X, O )
@ 감자가 하늘을 보면 푸르딩딩하게 된다. 그 때 생기는 성분이 쏠라닌이다.( X, O )
@ 감자 생육에 최적 조건은 서늘하고 일장이 길어야 한다.( X, O )
@ 강원도에서 감자 생산이 많이 되었던 것은 밭이 많아서이다.( X, O )
@ 감자 꽃은 흐드러지게 잘 피지만 씨는 좀해서 볼 수 없다.( X, O )
@ 우리가 먹는 감자 알갱이는 뿌리가 아니라 덩이 줄기이다.( X, O )
@ 감자에 치명적인 해충은 진딧물이다.( X, O )
@ 감자 종서를 구입하여 쓰는 이유는 virus free에 있다.( X, O )
@ 가을 감자가 봄 감자보다 수확량이 적은 이유는 기후탓이다.( X, O )
@ 감자는 더위에 약하다.( X, O )
@ 감자의 생육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X, O )
@ 감자는 과거에 구황작물이었다.( X, O )
20문제 정도가 제시되었다.
여기서 부정적인 의미인 X의 선택이 거의 없었던 분은 감자에 대한 상식이 풍부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대급부로 촌놈(?)의 기질이 풍부하다고 보면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세상사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초 이성계를 도와 개국에 큰 공을 세웠던 무학대사의 말이 떠 오른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게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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