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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57 - ‘언어도단(言語道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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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0-03-09 16:13 댓글 2건 조회 7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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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할 때 가끔씩 휴전선에 최 근접한 철원으로 출장을 갔었다. 지금처럼 춘천에서 철원으로 직통하는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화천군 삼거리 검문소를 경유하여 다목리를 지나 고개 하나를 넘어야 신철원에 도착하는데 이 고개의 이름은 스프링고개  

국도 56호선인 이 길은 화천군과 철원군의 경계지점인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이 공교롭게도 가파르게 꼬불꼬불 한 형상이 마치 굵은 쇠를 감아놓은 스프링처럼 생겼다. 해서 아마도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이 고개의 이름을 그렇게 별칭으로 붙여놓은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아예 자리를 잡았나보다 생각했다.  

다목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철원 가는 길을 물으면 하나같이 스프링고개를 넘어가야 한다고 했으니 그 고개는 나의 머리 속에 스프링고개로 저장되었다  

그런데 이후, 길을 넓히고 이정표를 새로 세웠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정표에 그 고개는 수피령(水皮嶺)’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애시당초 이 고개의 실제 이름은 스프링고개가 아니라 수피령(水皮嶺)’이었던걸까? 하지만 다목리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고개 이름을 수피령이라고 말하지 않고 스프링고개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나 되었으니 아예 스프링고개로 자리를 굳힌 듯하다  

스프링(Spring)은 봄으로 대표되는 단어지만 용수철, 솟아오르는 샘, 또는 시계의 태엽으로 번역되기도 하니 역동성이 돋보이는 꽤 괜찮은 명사다. 이 고개를 넘으면 최전방 DMZ 이다. 그러니 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휴가나 외출로 화천이나 춘천방향으로 반대로 이 고개를 넘어 올 때는 비로소 긴장감을 풀게되는 봄(SPRING)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혀를 약간 굴리면 수피령이나 스프링이나 별반 구분이 잘 안되니 굳이 따져서 무엇하랴.  

언어도단(言語道斷)은 너무 어이없어서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는 언어의 경지를 넘어선 를 말하니 스프링고개와 수피령, 어느 것으로 먼저 불려졌든간에 이 이상의 절묘한 직설적 언어도단이 또 있을까 싶다.    

스프링(Spring), 봄이다. 맘껏 활동해야 할 몸이 방구석에 갇혀 있으니 온몸이 근질거린다. 코비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벌어지는 즈음이니 누구를 만나자고 할 수도 없고 누가 만나자는 기별도 없다. 불행하게도(?) 신천지 교인이 아니어서 영생의 길은 놓쳤는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추억으로 가는 길은 열려있으니, 오늘은 국도 56호 길을 따라 스프링고개’, 수피령으로 드라이브나 다녀와야 하겠다.

낮달이 반겨 줄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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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이런저런 인연으로 신철원과 화천엔 여러 번 다녀왔지만
스프링 고개(=수피령)는 넘어보지 못했네요.
기회 있으면 낮달이 없어도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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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기회 닿으시면 여행삼아 한번 넘으셔도 좋습니다.
낮달이 안보이면 산정호수 둘러 보시고 그 아랫동네 일동에서 낮술(일동막걸리) 한잔 하셔도 됩니다.
허나 마나 벌써 50일째 랍니다. 그저 무탈하시기를 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