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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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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마치며 -
필자는 글을 시작하면서 조선 후기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이양과 동 시대의 천기출신 운초 김부용의 세대를 뛰어넘은 사랑의 위대함과 문학적 향기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대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사랑을 지켜봤거나, 그들의 삶과 문학세계를 시간과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하지 않은 이상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에 있어 매우 특별한 그들 내면의 세계에 다다르기에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잊혀져서는 안 될 것 같은 매우 특별한 사랑과 그 사랑을 통한 문학의 향기를 기록하는데 그친 듯 하여 아쉽기만 하다.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김이양대감의 무덤은 자손들이 돌보지 않아 문인석과 비문은 사라지고 방치되어있음이 관심있는 학자들의 현장방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세도가의 묘역은 찾는 이 없이 잡초만 무성한데, 천기 출신임에도 운초 김부용을 기리는 사람들은 많아서 그의 시비가 서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무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하니 문학의 힘과 향기는 참으로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김 부용(金芙蓉; 1813~186?), 그녀는 주옥같은 한시 300여 편을 '운초집'이라는 문집으로 남겼다. 일부 학자들은 이 책에 대해 규수문학(閨秀文學)의 정수라고도 하지만, 규수란 허난설헌처럼 양갓집에서 자란 처녀를 정중히 부르는 호칭으로 부용의 경우 어려서부터 기적에 올라 기녀로 생활하다가 김이양의 소실로 생을 마감한바 조선시대 ’기생문학(妓生文學)'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 한, 부용의 경우 보통의 기생이 아니라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힐 만큼 문재가 뛰어났으며, 문집까지 남겼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의 여류문인‘으로 그 신분을 격상해도 좋을 듯 하다.
필자가 제목으로 붙인 ’불멸의 사랑‘, 세대를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던가 김부용은 김이양과의 사랑을 이렇게 말했다.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30객 노인이 있는가 하면 80객 청춘도 있는 법이지요.”
80객 청춘도 있는 법이라...
주)
11회에 걸친 연재를 마칩니다. 연재를 마치며 졸필로 그녀를 경포대로 초대를 해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招 魂>
歲月의 무게를 견딘 기와는 이끼를 덮어 뜨거운 햇살을 받아 삭이고
젊은 날의 芙蓉은 草堂 古屋의 처마 끝에서 꽃으로 還生했는데
내 그대를 물안개 피어오르는 鏡浦湖 月波亭으로 초대할지니
푸른 달빛 아래 맑은 술잔 나누며 함께 이 밤을 사르고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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