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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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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도 사랑에 빠지고 그리움과 기다림을 마주하게 되면 감성이 솟아 시가 절로 나온다. 하물며 당대의 여류시인에게 그 그리움이 절절한 시로 새겨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수밖에 없다.
길고 길어진 그리움과 기다림, 하루 한 시각이라도 빨리 대감에게 가고자 하는 기원은 부용으로 하여금 ‘탑’ 형식의 시를 짓게 했다. 이리하여 한 글자로부터 시작해서 각 구절에 한 자씩 더하여 탑 형태를 이루는 그 유명한 ‘부용상사곡’이라는 시가 탄생하게 된다.
“이별하고나니
그립기만 합니다.
길은 멀고 소식은 더딥니다.
생각은 그곳에 있고 몸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시는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은 채 황천객이 되어 그 외로운 혼이 달 아래서 길을 따라 울며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로 끝을 맺는다.
芙蓉相思曲
別
思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羅巾有淚
紈扇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倚孤枕驚殘夢
望歸雲?遠離
(중략)
獨守空房淚縱如雨三生佳約焉有變
孤處深閨頭雖欲雪百年定心自不移
罷晝眠開紗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推玉枕挽香衣送歌舞同春莫非可憎兒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如是耶
三時出門望出門望哀哉賤妾苦心果如何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孤魂月中泣長隨
이별하니
그립습니다.
길은 멀고
편지는 더딥니다.
생각은 그곳에 있고
몸은 여기 있습니다.
비단수건이 눈물에 젖었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의 기약은 아득합니다.
향각(香閣)에서 종소리 들려오는 밤
연광정에 둥근달이 솟아오르는 때
높은 베개에 의지하며 잔꿈에 놀라 깬 이 몸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니 먼 이별이 슬프기만 합니다.
(중략)
홀로 빈방에 누우니 눈물이 비 오듯 하지만 삼생(三生/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가약(佳約)이야 어찌 변할 수 있으며,
혼자 잠자리에 누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백년정심(百年定心)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오리까.
낮잠을 깨어 사창(紗窓)을 열어 화류소년(花柳少年)을 맞아 보아도 그저 정 없는 나그네일 뿐이요,
옥침(玉枕)을 밀쳐낸 후 향의(香衣)를 이끌며 춤을 추어도 보지만 모두가 가소로운 사내들뿐이옵니다.
천리 밖에 있는 사람 기다리기 이토록 어려우니 군자(君子)의 박정함이 어찌 이다지도 심하시나이까.
삼시(三時)에 문을 나가 멀리 바라보니 문밖에서 바라보는 애처로움, 천첩의 깊은 고심이 과연 어떠하겠나이까.
오직 바라옵건대 관대하고 인자하신 대장부께서는 결심을 하고 강을 건너 구연(舊緣)의 촛불을 혼연히 기억해 주셔서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은 채 황천객이 되어 그 외로운 혼이 달 아래서 길을 따라 울며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애절함이요 간절함이며, 앙탈이요 앙증맞은 협박이고 그야말로 혼이 담긴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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