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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6 –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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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4-27 13:21 댓글 0건 조회 1,1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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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앞에서 망연히 앉아서 세월 타령만 하고 있을 때 전해진 낭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주연상도 아니고 까짓 조연상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난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상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상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1957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우메기 미요시 이후 64년만이다. 물론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그녀의 수상은 수상 그 자체도 그러려니와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승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생계형 배우그녀에게 따라붙은 수식어다. 절실했고 먹고살아야 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워야 했으며 삶에서 민폐가 되지 않기위해 연기를 선택했던 그녀는 이제 세계적인 여배우로 정상에 우뚝 섰다. 늦은 나이에 세계의 영화무대에 데뷔했지만 연기인으로서의 화려함 보다는 관록과 겸손이 돋보였다. 시상식에서도 상황에 맞게 있는 그대로의 내숭스럽지않게 소감을 말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여유가 아니었다.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를 막론하고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먹고사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자체가 삶이 아니던가. 겉보기에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은막의 일원이었지만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고,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홀로 두 아이를 키워내야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최고만 고집하지 말고 최중最中이면 어떠냐며 일흔넷의 인생에도 희망의 불씨가 타고 있다는 것을 연기로 보여줬다. 배고플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솔직담백함이 매력인 연기인, 영화 대본이 성경과 같았다는 진국 배우, 민폐를 병만큼이나 터부시했던 그녀는 끝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극중 그녀의 이름은 흔하며 익숙하고 친근한 순자다. 시골 냇가나 습지에 자생하며 질긴 생명력과 강한 적응력을 가진 여러해살이 미나리는 마치 순자를 닮았다. 

기교보다는 굴곡진 삶에서 체득한 진솔함과 미나리 같은 근성을 연기로 승화시킨 그녀에게 이제 우리는 이런 칭송을 보내도 된다. 

대한민국은 윤여정이라는 여배우를 보유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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