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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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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삶
구차한 삶이 내 곁에 오는 것을 반겨할 사람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누구다 다 싫어하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구차한 삶을 살기는 싫지만 결국에는 구차한 삶으로 귀착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버둥하는 동물이라 보여진다.
사자나 호랑이 돼지나 닭과 같은 짐승의 세계에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간다는 개념은 잘 통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냥 본능적으로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새끼도 낳고 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불평이나 불만은 존재할 수 도 없고 그것을 어디 가서 하소연했다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삶을 사는 방식을 상당히 중요시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다.
인간을 동물과 동일시한 선상에서 본다면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새끼만 낳으면 만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온갖 곡절을 다 집어넣어서 그 안에서 허우적
거리도록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밥도 경기미로 지은 쌀로 만들어 먹어야 만족하고 새끼도 남보다 훨씬 더 똘똘한 놈을 낳아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들이다.
누구나 다 구차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이를 갈면서 살아가고 있다.
생긴 것도 멋있어야 하고 학교도 일류급으로 나와야 하며 배우자도 연예인 급으로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물론 현실은 그와 딴판으로 흘러가지만 내심에는 최상위급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현실과 이상 간에 괴리가 커도 너무나 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갭이 크면 사달이 나게 돼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점과 현실에서 받아들이는 성적표의 차이가 나면 날수록 심적 고통만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누구나 다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한다면 험악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본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을 행복한 삶의 근본이라 생각한다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구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고 본다.
구차하지 않은 삶의 경계를 너무 높여 놓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15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5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 보아도 자신이 초라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45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당신은 내보다 초라한 삶을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자신을 왜소화 하는 좋지 못한 버릇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남과 비교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은 초라해 진다.”라는 논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으리라 본다.
왜 힘 있고 멋있는 나라에 태어나지 못하고 분단된 한반도에서 태어나 남의 나라를
쳐다보면서 살아야 하냐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거창하게 국가간 비교에서도 자칫하면 국민 전체가 초라해 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남보다 부귀영화를 더 누리다가 천수를 하고 저승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게 어찌 내 뜻과 같이
되겠는가.
하지만 살다보면 결국은 구차한 삶 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진 것이 인간인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 엉금엉금 기어서 다니다가 죽을 때도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기어 다니다가 죽는
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엔 기어 다녀도 신이 났지만 늙어서 기어 다닌다는 것은 곧 구차한 삶의 끝판 왕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우리는 구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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