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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漢詩이야기(183) .. 부여 낙화암을 오르다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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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양 작성일 2016-10-21 20:40 댓글 1건 조회 8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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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성(扶蘇山城) 낙화암으로 오르는 길옆에 세운 작자미상의 시비(詩碑)

    어제 내가 모이는 서예회원들 35명이 아침 7시에 춘천을 출발하여 오전에 청남대(靑南臺),
    오후에 부여(扶餘)문화원, 부소산 낙화암, 고란사를 둘러보고 춘천으로 돌아왔다.

    가을철 버스예약등을 한달여전에 정한 날이어서 강릉 모교에서 열린 동문토론회에 총동문
    토론회에 불참하게 되어 여러 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 모임의 회장이니 빠지지 못하니...

    부소산성(扶蘇山城) 해발고가 100여m 임에도 낙화암(落花巖)이 있는 곳이 가파르니 오르기
    힘들어 포기하고 내려왔다. 오르는 길옆에 작자미상의 시비가 있어 옮긴다. 제목 낙화암

       百濟臣民淚滿巾 [백제신민루만건]  백제신민의 눈물 수건을 흠뻑 적시니
       堂堂忠義有何人 [당당충의유하인]  당당하고 충성스런 사람 몇이나 될가
       若無當世落花巖 [약무당세낙화암]  만약 당시에 낙화암이 없었더라면
       古國江山寂寞春 [고국강산적막춘]  옛 나라의 강산은 쓸쓸한 봄이었으리.
    백제는 고구려 동생의 나라다. 그러나 장수왕이 남침하여 백제왕을 죽이니 서울 남쪽에
    있던 백제가 공주로 천도하고 26대 성왕이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면서 부여(서기538년)로
    천도하여 31대 의자왕때 나당연합국에 멸망할때까지 123년간의 백제수도였다.
    낙화암에서 3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진지는 아무도 모르나 일연의 삼국유사에 적힌얘기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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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낙화암 시문에 "臣民"을 쓴 걸 보면
작자가 일제 때를 산 사람이 아닐까?

삼천궁녀의 진실 여부는 차치하고
세양이 오르지못한 그 가파른 언덕을
죽을힘으로 올랐을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