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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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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7-09 17:46 댓글 0건 조회 5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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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던 시절


  나이를 먹을수록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인 인간인가 보다
. 젊은 날에는 험악한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라는 미명하에 참고 견디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기 점점 힘들다는 느낌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은 자연 그대로인 것이다. 무더운 어느 날 시원한 빗줄기를 기대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열망을 외면하다. 지루한 장마가 걷혔으면 하지만 비는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냥 쏟아진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불가항력인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도 험악한 자연의 환경을 감내하기 위한 방편을 찾기 시작한다. 더우면 덜 덥게 추우면 덜 춥게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막을 방도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험악한 자연에서 견디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과정을 우리는 문명의 발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마 문명의 발전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자연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양양에 가면 선사 유적지가 복원되어 있다. 서울 암사동에도 양양과 비슷한 모양의 선사 주거지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곳 다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주로 하여 자연에 험악한 환경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자 하는 모습을 역력히 보고 있는 것이다. 강한 햇볕도 인간에게는 고역이 될 수 있고 겨울철 하염없이 내리는 눈도 낭만이 아닌 인간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좋지 못한 환경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적으로 변화를 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의 먼 조상들은 머리를 굴리고 굴렸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과 30~40년 전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물론 지금의 나이가 30~40정도 된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선풍기도 있었을 것이고 에어컨도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태어났던 사람들의 유년기는 그야말로 자연과의 일치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는 여름날이 아무리 더워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등목 정도, 그늘에서 부채질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물론 냉장고도 없었다. 시원한 냉수라는 것은 공동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금방 퍼 올린 미지근한 물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전까지는 농경문화가 주가 되었다. 농경문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오로지 하늘만 처다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씨를 빨리 뿌려 빨리 수확하여 빨리 허기를 달래고 싶어도 하늘이 그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액션을 취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가 돼야지만 씨를 뿌릴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여름날에 고된 농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은 그때에 가장 바쁘고 분주하고 어려운 일이 다가가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여름날에 힘을 쓰진 않으면 농업 자체가 영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겨울은 눈 치는 일 이외는 만고 할 일이 없는 환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개미처럼 여름철에 고생을 했으면 겨울철에 빤질거리면서 노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자연을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헤아려주지는 않은 것 같다.

 

  한 여름날 땡 볕에서 하는 일 중에서  논에서 김을 매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우리가 벼농사를 주로 했을 터이니 우리 조상들의 대부분은 여름날 이런 부류의 일로 땀을 흘렸을 것이다. 여름날의 논바닥은 어땠겠는가? 뜨끈뜨끈한 논 물에서 토시도 차지 않고 맨발로 들어가 맨손으로 땅을 헤집으면서 잡초를 뽑아 그것을 논바닥에 거꾸로 쑤셔 박았으리라 본다. 옛날 사람들의 피부나 현대 사람들의 피부나 다를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능성 토시가 있었겠는가? 기능성 장화가 있었겠는가? 선크림이 있었겠는가? 기껏 해야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맥고자 정도가 유일했으리라 본다. 한나절 단위로 일하는 당시를 회상하여 보면 그들은 최소한 몇 시간 동안 논바닥에서 일 하고 난  후 흘린 땀은 적어도 몇 리터는 되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문화나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데 대한 안쓰러움도 지울 수 없다. 요즘은 힘든 일을 하고 땀을 흘리면 응차 냉장고에서 맥주라도 꺼내서 갈증을 해소하였지만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었을 뿐더러 시원한 맥주가 있었을 리가 없었다고 본다. 단 막걸리라는 술은 있었지만 그것은 갈증을 풀어준다는 것 보다 힘든 노동의 애환을 잠시나마 마비시켜주는 역할밖에 못했으리라  본다.

 
여름날 농사일이 논에서 김매고 피 뽑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강원도에서는 산지가 많음으로 밭농사의 애환은 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땡볕에 조밭이나 옥수수 밭의 바랭이나 여뀌 등을 한나절 정도 뽑고 나면 그야말로 탈진상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양분이 많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그렇게 일을 했으면 몸에 무리가 그리 많이 가지는 않았겠지만 당시의 현실은 목숨의 연명 수준에서 먹고 그런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게 그저 가슴 아플 뿐이다. 우리가 땀을 흘리고 마시는 한 잔의 맥주를 그냥 마시는 것 보다 우리 조상의 삶을 조금이나마 생각하면서 마시면 훨씬 더 인간적인 맥주 맛이 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엇이든지 의미가 있으면 가치가 더 높아지게 돼 있는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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