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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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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06-26 20:47 댓글 0건 조회 6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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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상대적

 

 

내 경험상 절대적 행복은 이 세상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돈이 많아서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마이다스 손을 떠 올려 보면 얼추 답이

 나오리라 본다.

많다고 해서 다 행복하다면 돈 많은 초일류 갑부들은 다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인식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없는 것 보다야 행복도가 높은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행복의 요소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태생부터 행불행이 갈라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요소를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태생부터 행복을 허리에 꿰차고 나온 셈이다.

권력이 행복에 전부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왕이나 권력을 가진 자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이는 천부적인 행복의 소유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인물이 잘 난 사람, 예체능에 특기가 뛰어난 사람, 언어표현이 대단한 사람, 수리능력이 

뛰어난 사람 같은 경우 태생부터 행복을 좀 더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라 본다.

 

그렇다고 아무런 소질도 없고, 가진 빽 배경도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보통으로 태어나도 행복을 어떻게 일구어 가는가에 따라 천부적 행복요소를 가지고 태어

나는 사람 못지않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행복의 척도를 어디에다 두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자신이 인생을 엮어가면서 행복의 관점을 잘 만드는 것도 인생을 덜 피곤하게 사는 

길이라 보면 될 것이다.

잘못하다 돈의 수전노가 되었는데 돈벌이가 잘 안된다고 한다면 이는 인생이 낭패를 

가져올 수 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쥐고 싶은 욕망은 크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복의 세계로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큰 것을 성취해야 행복하다고 인식한다면 그 큰 것을 이루기 위하여 버둥버둥 하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막연하게 큰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거머쥐어야지만 행복하다고 한다면 이는 씨도 뿌리지

 않고 수확하겠다는 고약한 심보의 발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길로 간다는 것은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상반되게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인생을 덜 피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安貧樂道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굳이 버둥거리지 않아도 행복의 목표점에 수시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요는 그렇게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놔두지 않는 바람에 삶이 더 거칠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 존재이다.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형체나 실체도 없고, 개념도 불분명하면서 뜬 구름 같이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이게 행복이다.”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 본다.

 

그러나 행복을 느낄 때는 있을 것이다.

언제 그런 것을 제대로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상대적 행복일 것이다.

행복은 이런 것이 라라고 조건을 붙여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각자의 반응은 다르리라 본다.

굳이 행복의 가장 원초적인 조건을 든다면 배부르고, 등 따시고, 아프지 않고, 비 맞지 않고

추위를 타지 않으면서 안락한 정신상태가 유지됨을 일컬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런 조건이 주어진다면 죄다 행복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렇다.”라고 선뜻 대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게 바로 행복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런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살아가는데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요?”라는 반문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런데, 위와 같은 조건에서도 상대성이 전제된다면 그때부터 진한 행복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똑 같은 조건에서도 상대성이라는 양념을 가하면 진정한 행복의 요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밥상을 받았다거나, 여름 날 운동을 하고 난 다음 갈증이 

극에 달했는데 시원한 맥주가 내 손에 주어진다면 어떻겠는가.

평상시에는 밥 한 그릇, 맥주 한 잔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절실한 다음에 주어지는 그런 

조건에서 한없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진하게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심하게 아파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그 병이 사라졌다고 하면 그때 느끼는 행복감은 극에 달하리라 본다.

 

행복감은 휘발성이 엄청 강하다고 본다.

아무리 행복감에 젖어 있다고 해도 그 시간이 지나가면 휘발이 되어버려 평상심으로 

돌아오게 돼 있는 법이다.

휘발성이 없다고 보면 어떤 조건에서의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은 행복감이 충만했을 때 그걸 조절하는 물질이 몸에서 어떻게 분비될 것인가를

 연구하여 행복하지 않은 시점에서 그걸 투여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연구도 하였다.

해서 발견한 물질이 암페타민, 도파민, 아드레날린, 엔돌핀, 세로토닌 같은 것이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물질을 함부로 투여 받는 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이런 물질이 우리 체내에서 나올 수 있도록 조성작업을 해 주는 것이 행복한

 삶의 과정을 엮어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행복물질을 이용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그런 것도 자주 그리고 많이

 쓰다보면 중독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중독이 심해지면 무기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살아보면 행복이란 존재는 순전이 우리 마음에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억만금이 있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쥐뿔도 없어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행복에 어떤 기준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기준에 맞추어 주면 간단히 끝날 문제이다.

하지만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잣대가 있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는 있다.

나물먹고 배부르고 등 따시니 이게 행복이 아니겠느냐?”라는 잣대가 있긴 있지만 요즘

 시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뭣을 해도 남보다 좀 더 나아야 한다.”라는 개념을 행복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행복을 맛 

볼 날은 요원하리라 본다.

돈도 좀 더 많아야 하고, 권력도 좀 더 커야하며, 명예도 그럴싸할 정도로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 건강도 타인보다 월등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 조건에 부합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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