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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전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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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07-07-12 13:35 댓글 0건 조회 2,9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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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생활속에서 쌓인 응어리를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일괄처리하지만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노래방이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고 여행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을 것이므로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으리라봅니다.

물론 지믐처럼 생활이 복잡하지 않았기때문에 엄청난 량의 골머리아픈 응어리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생기는 것들의 해소에 묘책은 없엇으리라 봅니다.

더더욱 여자들의 신분으로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좁았으므로
  풀어야 할 응어리는 고스란히 본인이 삮히거나 가슴에 묻어두는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묵은 것에서부터 새 응어리까지, 소소한 응어리에서 억에 넘는 응어리까지 
하나 하나가 모아져 하나의 한(恨) 으로 뭉쳐지면서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았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해서 주변에 초상이라도 날라치면 당사자인 상주보다 더 슬피 울면서 절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망자의 인생이 곧 자신의 인생과 일치된다는 생각에 그 많은 한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고 간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아니 나올 수 없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유교적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관혼상제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한
사회를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 장례문화만큼은 우리 조상들의 애환도 함께 실어보내는 일인 만큼
어는 행사보다 감정에 의한 부분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의 조상이 뿌린 씨에 의해서 존재하는 인간인만큼 가슴속에는
수천년동안  만들어진 유전 인자가 내재해 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여한(餘恨) 없이 산다."는 말이 존재하겠습니까?

서로가 한(恨)이 안생기도록 배려를 해 주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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