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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목사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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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기 작성일 2014-04-03 23:04 댓글 1건 조회 3,4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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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목사의 변

1977년 5월30일 군인교회 군종사병으로 원주 군수지원 사령부 군인교회에서 전역하고 곧 바로 강원도 속초시 교동664번지 2층 셋방을 얻어 전도사로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니까 벌써3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갔다.

예수는 중학교 2학년때 동네 정신이상병에 걸린 마을처녀가 병이 치료되는 것을 보고 나는 생애 최초로 근원적 마음에 충격을 받고 이 길만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줄곧 외길을 달려왔다.

구세군 사관학교를 1980년 6월20일 졸업 임관하고 충남 논산, 첫 발령을 받아 경북영덕, 경기도 평택시, 서울 영등포교회에서 시무를 했다. 보통 구세군 사관들은 2-3년이면 한번씩 임지를 바꾸었는데 나는 행운아로 보통 한교회에서 5년이상 시무했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한국 구세군교회 당시 서울시내 빅사이즈교회가 5곳에 있었는데 그중에서 영등포 교회가 1,200명 재적에 600-700명 회집되어 주일 아침 6시부터 오후4시 까지 3-4회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시무 하였다.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매우 바쁘고 분주했다.

그 후 더넓은 세상이라고 생각되어 장로교 목사로 전향하여 장로교회 神學과 敎理를 공부하고 牧師按手를 받고, 내가 다시 시작한 서울 구로동 서울중앙 교회에서 19년째 시무중이다.

처음에 교회를 시작할 때 교회이름을 공모했다. 교인들이 많은 이름을 적어 공모했 는데 그중 중앙교회와 브니엘 교회가 제일 많았다. 시작당시 장로가 추천한 중앙교회가 우리교회의 명칭으로 당첨되어 구청과 세무서에 개 교회 법인으로 등재했다.

교인들은 큰 빅 사이즈교회에서 교회 생활하는 것을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은 대리 만족심리가 분명 있는 것 같다. 비록 자기는 작은 집 작은 사람이지만 교회라도 큰 교회에 나가면 동류 집단의식에 일원으로 자부심을 같는 대중 심리을 느끼는 것 같다.

영등포 구세군 중앙영문(교회) 였으니까 중앙이 꼭 들어 가야고 한다고 그쪽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찬성표를 던졋다. 나는 내심 부담스러운 이름이지만 시대적 대세가 그렇게 돌아가고 또 주소록을 열람해보니 구로구 350여교회중 당시 구로중앙 감리교회(곽전태목사시무)는 있어도 장로교회는 중앙이라고 이름을 쓰는교회가 없었다.

지금 신 주소는 서울시 구로 중앙로 26길24로 구로구청 사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우리교회 건물 주소다. 그때 그렇게 했는데 선견 지명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지명이 중앙이 되었다.

개척 5년만에 지하1층 지상5층 건물을 매입했다. 교단 상위권 교회로 전국적으로 손꼽아 바도 중위권 교회로 잘 나갔다. 그래서 교단 제93회 총회장을 역임한바 있다.

인문학,한시에도 기승전결(起承轉結) 있듯이 인생의 생애주기도 춘하추동 같은 기승전결이 있고 교회와 기업도 한계성장 싸이클이 있다.

교회가 한창 부흥 할 때 교회 주차문제로 교외로 이전 할려고 했는데 장로회의에서 부결되어 일을 진행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 교회 이전신축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작은 교회로 다시 전락해서 패밀리 처치가 됐다. 물론 후배양성을 위해서 신학교도 우리 건물에서 운영했다.

그러나 나는 신앙생활은 수도(修道)생활과 같다고 생각하고 낙심치 않는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적 흐름을 감지하고 사회복지 쪽으로 목회 전환을 꾸준히 준비 해 왔다.

내 나이 비록 젊은 노인이지만 아직은 회생과 재기를 충분히 꿈 꿀 수 있다. 어느 동창회 자리에 나갔는데 잘 아는 친구가 개척교회 목사라고 소개를 한다. 하기야 인적 자원으로 볼 때는 또 다시 개척교회 목사다. 그러나 아무데나 개척이라는 용어을 막 붙이면 안 된다.

신학대학을 갓나와 최초로 시작할 때 개척교회 목사지, 목회 37년를 하고 교회건물과 자산이 있는 이제 은퇴를 앞둔 목사를 개척교회 목사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요즘 신학대학을 갓 나와 목사안수 받고 개척을 할려면 서울에서 지하 조그마한 교회를 전세를 얻는다고 해도 족히 1억원은 있어야 개척 할수 있다. 그만큼 서울개척이 어렵고 힘들다 두 번 다시 개척을 알고는 못하는 일이다.

건물이 자가교회 라고 부자교회는 아니지만 충분히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는교회 역량이 있다.

교회는 세상전체를 어항으로 보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진보적 목회와, 내 방주(方舟)내 어항에 물고기를 채워야 목회라고 생각하는 전 근대적 사고를 가진 근본주의 보수 목회자가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들에 핀 들꽃을 그대로 두고 가꾸고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꽃을 꼭 꺽어와서 자기방 꽃병에 꽂아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내가가진 신학사상(神學思想)은 “한손에는 신문을 한손에는 성경을”그리고 전인목회 “한손엔 빵을 한손엔 성경”을 이라는 슬로건 으로 살아 왔다. 나는 목사요 사회복지사다. 사람의 육신을 살리는 빵과 영혼을 살리는 성경을 동시에 좌시하고 목회를하고 있다.

일찍이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 김동길교수 함석헌 선생 장준하 선생 이들도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방주식 내교회 중심이 아닌 무교회주의 신앙인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교회주의자는 아님을 밝힌다. 교회 사이즈보다는 사회운동에 인간의 근원적 욕구에 만족하는 구원을 선포해 보려고 노력하는 목사다.

서울중앙교회라고 하니 큰 교회 목사인줄알고 지방 곳곳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다고 개척교회는 아니다. 요즘 교회명은 차라리 겨자씨나 작은 베다니교회 같은 아니면 월드 비젼을 가진 교회명이나 쉴만한 물가 교회 이런 식이다.

물량주의나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교인이 몇 명 모이느냐? 봉급을 얼마 받느냐? 로 사람을 평가 할 려고 하지만 교회는 한 사람이 모여도 그 속에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곧 지상의 참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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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시작님의 댓글

새로운시작 작성일

안녕하세요. 장 목사님~^^
이제야 보았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장 목사님! 앞으로 뜻하신 대로 잘 이루어 지시길 기원합니다.
장 목사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