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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길 위에서 길을 묻다 ⑤ - '晩 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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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4
작성일 2015-10-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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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낙엽이 지고, 스산한 바람은 만추를 재촉합니다. 가을에는 온지 무엇이라도 자꾸 끄적거리게 됩니다.
이면지에 낙서도하고, 하릴없이 P.C를 켜고 오래된 팝송을 들으며 맥(脈)없이 자판을 두드립니다.
시답잖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었든)하잘것없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시답잖고 시(詩)답지 않은 詩를 한편 써 봤습니다.
“晩 秋”
가을에는 훌쩍 떠나 볼 일이다.
요란하게 짐을 꾸릴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가지 걸망에 넣어 메고
그렇게 훌쩍 떠나 볼 일이다
꼭 멀리 가야 할 일도 없다
늦은 아침 물안개를 따라 떠났다가
저녁에 노을 타는 냄새를 맡으며 돌아온들 어떠리
쑥부쟁이가 가없이 펼쳐져 있는
제무시(GMC)가 시커먼 매연을 내뿜던 옛 산판길이라도 좋고
미루나무가 늘어선 신작로라면 더 좋다
은빛 억새가 쓰러지도록 바람에 일렁이면
잠시 쉬면서 삶의 모서리에 다친 마음도 달래고
말라 부스러지는 영혼을 눈물로 적셔도 주자
눈도 깊어지고
가슴도 깊어지고
추억도 깊어져
온통 깊어진 마음으로 돌아오면 된다
가을엔 그저 훌쩍 떠나 볼 일이다.
허적 허적 산모랭이를 돌아 집에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운다음
아내의 퍼진 허벅지를 베고
주절 주절 옛 이야기를 하다가
가을 낙엽처럼
시나브로 잠들 일이다.
잔잔히 코고는 소리에 더 깊어가는 晩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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