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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④ -2 - “두번째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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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4 작성일 2015-10-18 20:38 댓글 0건 조회 1,2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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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인 즉 ㅇ순이와 이종사촌 누이동생은 같은 동갑내기인데 서울에 시집을 가서 살다가 보니 같은 동향이라 의기투합해 오랫동안 모임을 하게 되었답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정기모임이 있던 어느 날 40여년 만에 처음 털어놓는 그녀의 첫사랑 얘기를 듣다가 여드름이 막 돋기 시작한 한 남학생이 전해준 편지 한통과 그 아릿한 시절의 언저리, 서로 바라만 보며 가슴이앓이를 해야 했던 사연들이 들려지고 그 반쪽의 캐릭터가 왠지 이종사촌오빠 같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동생은 인생 연륜에서 얻은 자신의 신통방통한 예감력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나였어. 추운겨울 언 손으로 던지듯 편지를 준 그 남학생, 걔가 바로 나였어.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가물 가물 하기만 한데 거리기만 한데,


이어지는 얘기로는 이름처럼 그 순진덩어리는 내 편지를 받고 아버지에게 들킬까 무서워 읽어보지도 못하고 부엌 아궁이에 넣어버렸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 애 결혼식 때 오빠도 왔었잖아. 그때 ㅇ순이도 식장에 왔었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옆을 스치고 지나갔지 뭐야!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어 그런데 글쎄 걔가 오빠가 학교 때 썼다는 시를 지금도 줄줄 외고 있더라니까!”

동생의 흥분상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럼 주말을 이용해서 추워지기 전에 같이 한번 내려오렴. 옛날 얘기나 함께 나누자 꾸나”

“그래 오빠, 그때 만나. 내가 꼭 꼭 데리고 내려갈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은 두방망이질 칩니다. 딱히 언제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가을, 시월의 어느 눈부신 날 그녀가 내게 올 것 같습니다. 


만나봐야 얼굴도 알아보기 어렵도록 벌써 4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비가 되어있고, 그녀도 물론 몇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 것이며, 빠르면 손자까지도 봤을 나이입니다.


지금 만나본들 떨림만이 존재했던 그 사랑을 추억 할 뿐이겠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한쪽 끝을 잡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한번 보고 싶다고, 옛날 얘기나 하자고는 했지만 만나지 말고 그냥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 둘 것인지, 아니면 한번 만나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볼 것 인지...

깊어가는 가을 길 모퉁이를 서성거리며 매일 매일 길을 묻습니다.

 

아, 나는 지금 두 번째 사춘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신: 이 사진을 퍼 옮기거나 하시면 자칫 저작권이나 초상권 침해에 해당될지 모릅니다. 
        그냥 봐 주시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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