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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열 번째 이야기 “첫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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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4 작성일 2015-11-29 20:51 댓글 0건 조회 1,0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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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문턱 小雪을 막 지났습니다. 김장이랑 월동준비는 하셨는지요?

어린 시절 이맘때면 어머니는 온 가족의 겨울양식이 될 김장을 마치고 김장독 뚜껑을 행주로 닦으며 긴 안도의 숨을 내 쉬곤 하셨지요. 첫눈이 그 김장독 위에 소복이 쌓이면서 비로소 겨울은 시작됩니다.

 

유년의 첫눈은 그저 신비 그리고 설렘 그 자체였지요. 이 부드러운 하얀 눈은 어디서부터 내리기 시작해 이처럼 포근하게 쌓이는 걸까? 그런데 말입니다. 신비한 것은 또 하나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첫눈이라는 말만 나오면 유년의 그 설레임이 영락없이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어찌 첫눈뿐이겠습니까? 첫사랑, 첫만남, 첫출근, 첫키쓰...‘자로 시작되는 단어는 다 설레임을 불러옵니다.   

 

대관령에 첫눈이 내린다는 뉴스를 보면서 계절의 중독 같은 특유의 그 설레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더 설레어옵니다. 기술했듯 사십여 년 만에 소식이 닿은 그 첫사랑 여인을 광화문에 첫눈이 내리면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回想, 한 번은 다시 그 시절로...’ 라는 그럴듯한 사유를 붙여 첫눈에 덮여가는 광화문에서 만나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한번 서성거려 보기로 한 것입니다.

 

지극히 위험 발칙한 발상입니까? 하지만 만난들 무슨 일(?)이야 생기겠습니까. 이미 오래 전 부터 한 남자의 아내이고 몇 자녀의 어머니일 것이기에 더불어 나이들어가는 친구로 이따금씩 만나 차라도 한잔 하면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야겠다고 마음으로부터의 선택을 한 것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그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필자가 이 글을 닉네임으로 올리는 이유는 다 이런 소소하지만 비밀스러운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풀어내기 위한 매우 의도적인 맹랑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인 안도현은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빌딩 숲 사이를  나비처럼 자유스럽게 폴폴 날리거나, 더러 함박눈이 되어 들판과 도심의 골목길에 켜켜이 쌓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화장을 막 지우는 여인처럼 시나브로 녹아내리는... 인생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변했을까?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무슨 얘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첫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지금 생각하면 사지가 오글거리도록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잠시l 미지의 소녀에게이렇게 시작되는 편지의 주인공인 그 여인에게로 향해있습니다.

 

아내가 언제 예고도 없이 밤새 찾아온 첫눈처럼 불쑥 내 방으로 쳐들어와 내 비밀스러운 작업을 방해할지 모릅니다. 오늘은 서둘러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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