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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⓻ - 가을비 우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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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라더니 오랜 기다림 끝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을비는 성급히 떨어져 누운 낙엽을 적시고 먼지로 뽀얗게 덮힌 보도 위와 거북등처럼 갈라져버린 저수지위에도 갈증을 풀어내듯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가을사내가 말 못할 사연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듯 그렇게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월은 누구에게나 참 바쁜 계절이었습니다. 농부들은 추수에 바빴고, 어부들은 전어 잡이에 바빴으며, 직장인과 백수들은 곳곳에서 펼쳐진 행사장과 단풍으로 물든 산과 들을 분주히 찾아다니느라 바빴고, 필자는 주말마다 몇 건씩 치러지는 친지 친구 자제들이 올리는 결혼식장을 찾느라 바빴습니다.
그 바쁨을 접고 잠시 쉬어가라고, 서두루지 말고 쉬엄 쉬엄 인생길을 가라고 하늘이 은전처럼 내리는 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사람들은 ‘브레이크 타임’이라고들 말하죠. 이런 시기의 휴식은 마치 잘 만들어진 스페인산 쵸코렛처럼 그럴 수 없이 달콤 쌉쌀합니다.
가을비 덕분에 잠시 쉬면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친구에게 안부전화도 넣어보고, 쇼파위를 뒹굴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을노래도 듣다가 스르르 꿀 맛 같은 낮잠도 한잠 잤습니다.
어제 사소한 다툼 때문인지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슬그머니 서고에 커피 한잔을 넣어주고 시장길에 나서는 아내는 아파트 마당에 내려서서야 찡긋 눈짓을 보내고 우산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우산이 비에 젖어 유난한 빨갛게 보이는 가을 끝자락입니다.
오늘이 입동이라니 곧 첫눈이 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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