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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이 동물스러운 삶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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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기
작성일 2014-02-03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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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이 동물스러운 삶을 꿈꾸는가 ?성경에서는 영혼을 가진 인간과 영(靈)과 이성(理性)이 없는 동물(짐승)과는 대단한 격차를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동물 보다 낳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기독교 창조론(創造論)을 신봉해 왔다. 그래서 다윈이 주창한 유전의 법칙 진화를 반대해 왔다. 다윈을 열등한 학자로 평가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동물학자 최재천교수 (생물학전공 이화여대교수)의 책 "통섭의 원리"를 읽으면서 이미 신학계에서도 주장하는 생태신학, 자연치유 신학, 창조신학, 통전적 신학 같은 이론이, 세상에서 논하는통섭,융합 이론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 교수는 다윈의 공적은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에 비교 할 수 있다고 치하 했다. 앞으로 경제학에서도 다윈을 빼고는 창조적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최 교수는 동물학자다 그러기에 인간은 일종 포유 동물 이다 라고 전제 한다.
철학자들도 인간 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거친 표현임을 전제하고 ' 동물스러우면 좋겠다' 우리 인간이 대단한 동물임은 틀림 없는데 그러다 보니 제 꾀에 넘어가는 짓을 많이 하고 산다. 자기 삶의 터전인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 하면서 산다. 우리 인간 은 지금 자신의 집을 불태우고 있는 걸 모른다. 그걸 인간 답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많은 상황에서 동물처럼만 행동해도 훨신 따뜻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동물 세계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물론 그분은 동물학자로 생태계를 연구 하고 자연에서 배우자고 하는 사람이다. 맞는 이야기다.
요즘 신문과 방송뉴스를 보면 동물만 못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낳은 자녀를 농약을 먹이고, 삶이 어렵다고 양육을 포기한다. 계모가 딸아이를 매질하여 죽인 사건이며, 자기를 낳고 혼신을 다해 일평생 돌본 부모를 길거리 버리는 배도, 어찌 짐승보다 인간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하겠는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할 때 흔히 이성(理性)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정말 이성이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가? 과연 동물에게 이성이 없을까 ? 최교수는 결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침팬지도 하고 싶은 일이 있지 만 다 하지 못하고 참으면서 살아 간다고 한다.강아지를 10마리를 기르지만 모두 개성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떤 녀석은 자주 눈치를 살피고 어떤 녀석은 천방지축이다. 동물은 로봇처럼 어떤 자극을 가하면 그 자극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성을 인간 만이 가지는 독특한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일 뿐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성이란 인간에 이르러 굉장한 수준으로 발달한 어느 속성에 불과 하다. 다른 동물에게도 이성이 어느정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성(理性)을 생각하는 능력, 감성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라고 간단히 정의 해 보자. 박쥐는 초음파를 보내서 나방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면 나방은 가만히 있을까? 박쥐의 초음파를 느낀 나방은 박쥐가 예상하기 힘든 불규칙한 방향으로 도망친다. 그럼 박쥐는 또 불규칙한 패턴을 예상해서 움직인다. 이건 감성인가 이성인가?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인간 많이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는 건 철학자들의 어색한 구분을 그대로 받아 드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교수는 동물에게도 이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철학자들의 주장하는 이성과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성은 논란 의 여지가 있지만 동물에게도 어느 정도의 감각을 느끼는 각혼이 있지 않겠나 생각된다. 다만 인간 등급이 도덕적으로 낮은 동물 등급만 못하게 되어 가는 이 시대가 동물스럽고 자연스러운 삶을 동경하게 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철학자들도 인간 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거친 표현임을 전제하고 ' 동물스러우면 좋겠다' 우리 인간이 대단한 동물임은 틀림 없는데 그러다 보니 제 꾀에 넘어가는 짓을 많이 하고 산다. 자기 삶의 터전인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 하면서 산다. 우리 인간 은 지금 자신의 집을 불태우고 있는 걸 모른다. 그걸 인간 답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많은 상황에서 동물처럼만 행동해도 훨신 따뜻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동물 세계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물론 그분은 동물학자로 생태계를 연구 하고 자연에서 배우자고 하는 사람이다. 맞는 이야기다.
요즘 신문과 방송뉴스를 보면 동물만 못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낳은 자녀를 농약을 먹이고, 삶이 어렵다고 양육을 포기한다. 계모가 딸아이를 매질하여 죽인 사건이며, 자기를 낳고 혼신을 다해 일평생 돌본 부모를 길거리 버리는 배도, 어찌 짐승보다 인간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하겠는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할 때 흔히 이성(理性)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정말 이성이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가? 과연 동물에게 이성이 없을까 ? 최교수는 결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침팬지도 하고 싶은 일이 있지 만 다 하지 못하고 참으면서 살아 간다고 한다.강아지를 10마리를 기르지만 모두 개성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떤 녀석은 자주 눈치를 살피고 어떤 녀석은 천방지축이다. 동물은 로봇처럼 어떤 자극을 가하면 그 자극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성을 인간 만이 가지는 독특한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일 뿐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성이란 인간에 이르러 굉장한 수준으로 발달한 어느 속성에 불과 하다. 다른 동물에게도 이성이 어느정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성(理性)을 생각하는 능력, 감성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라고 간단히 정의 해 보자. 박쥐는 초음파를 보내서 나방의 위치를 찾는다. 그러면 나방은 가만히 있을까? 박쥐의 초음파를 느낀 나방은 박쥐가 예상하기 힘든 불규칙한 방향으로 도망친다. 그럼 박쥐는 또 불규칙한 패턴을 예상해서 움직인다. 이건 감성인가 이성인가?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인간 많이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는 건 철학자들의 어색한 구분을 그대로 받아 드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교수는 동물에게도 이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철학자들의 주장하는 이성과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성은 논란 의 여지가 있지만 동물에게도 어느 정도의 감각을 느끼는 각혼이 있지 않겠나 생각된다. 다만 인간 등급이 도덕적으로 낮은 동물 등급만 못하게 되어 가는 이 시대가 동물스럽고 자연스러운 삶을 동경하게 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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