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동문 문화예술
漢詩이야기(6) .. 강릉출신 최수성 . . .
페이지 정보
작성자 世 讓
작성일 2016-01-18 19:27
댓글 0건
조회 1,182회
본문
강릉최씨[江陵崔氏] 필달계[必達系] 시조 사당은 강릉시 운정동에 소재한 황산사[篁山祠]이다.
시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중앙에 위치하고 우측(동편)에 원정 최수성[猿亭 崔壽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20세손 최수성의 위패를 모신 이유는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처형,
20여년후에 이율곡의 상소로 신원되어 영의정[領議政]에 추존되었기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심.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 정몽주와 최수성을 모신 화동서원[華東書院]. 매년 음8월 제행[祭享]
최수성은 조광조와 함께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여 함께 과거에 합격하여 趙光祖는
벼슬길에 나가고 최수성은 벼슬을 사양하고 야인이 되었으나 조광조와 김정[金淨, 대사헌]등과
절친하게 지냈는데 . . . 하루는 남곤[南袞]이 중국 당唐나라의 유명시인,화가이 왕유[王維]의
산수화 망천도[輞川圖] 한폭을 얻어 자랑겸 김정[沖菴 金淨]에게 시 한 수를 부탁하니 그당시
金淨의 방에 누어있던 최수성이 일어나서 자기가 시를 짓겠다고 자청한다. 南袞도 최수성이
詩文, 書畵가 뛰어남을 알기에 최수성에게 시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강릉의 옛 서적인 임영세고[臨瀛世稿]에 猿亭 崔壽峸 行狀記(원정 최수성 행장기)기록이 있다.
- 南袞甞以山水圖寄沖菴求題 公適見之題曰 : 남곤상이산수도기충암구제 공적견지제왈 - 남곤이
일찌기 충암(김정)에게 산수화 시제를 부탁하니 그곳에 있던 公(최수성)이 시를 짓기를 - - -
落日下西山 [낙일하서산] 저녁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孤煙生遠樹 [고연생원수] 먼 숲에 연기가 한 줄 오르네
幅巾三四人 [폭건삼사인] 두건을 쓴 서너사람
誰是輞川主 [수시망천주] 누가 망천의 주인인가?
- 袞見而嗛之[곤견이겸지 - 남곤이 이 시를 보고 흡족해 했다.] . . . <省略>
1519년 남곤등이 획책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조광조등이 귀양, 처형되고 2년후인 신사무옥
[辛巳誣獄]때 최수성이 체포되어 조광조와 역적모의하였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으나 후일의
이야기는 최수성이 남곤의 산수화에 붙여 지은 시, 誰是輞川主(누가 망천의 주인인가?) 싯구가
남곤같은 간신은 망천(輞川; 남종화를 완성시킨 왕유의 고향마을)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빗댄
글로 미움을 삿다는 이야기도 많다. [몇년전 소설가 최인호가 지은 유림(儒林)이라는 소설의
1권에 조광조, 김정, 최수성등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읽어보았다. (筆禍,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
시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중앙에 위치하고 우측(동편)에 원정 최수성[猿亭 崔壽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20세손 최수성의 위패를 모신 이유는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처형,
20여년후에 이율곡의 상소로 신원되어 영의정[領議政]에 추존되었기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심.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 정몽주와 최수성을 모신 화동서원[華東書院]. 매년 음8월 제행[祭享]
최수성은 조광조와 함께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여 함께 과거에 합격하여 趙光祖는
벼슬길에 나가고 최수성은 벼슬을 사양하고 야인이 되었으나 조광조와 김정[金淨, 대사헌]등과
절친하게 지냈는데 . . . 하루는 남곤[南袞]이 중국 당唐나라의 유명시인,화가이 왕유[王維]의
산수화 망천도[輞川圖] 한폭을 얻어 자랑겸 김정[沖菴 金淨]에게 시 한 수를 부탁하니 그당시
金淨의 방에 누어있던 최수성이 일어나서 자기가 시를 짓겠다고 자청한다. 南袞도 최수성이
詩文, 書畵가 뛰어남을 알기에 최수성에게 시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강릉의 옛 서적인 임영세고[臨瀛世稿]에 猿亭 崔壽峸 行狀記(원정 최수성 행장기)기록이 있다.
- 南袞甞以山水圖寄沖菴求題 公適見之題曰 : 남곤상이산수도기충암구제 공적견지제왈 - 남곤이
일찌기 충암(김정)에게 산수화 시제를 부탁하니 그곳에 있던 公(최수성)이 시를 짓기를 - - -
落日下西山 [낙일하서산] 저녁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孤煙生遠樹 [고연생원수] 먼 숲에 연기가 한 줄 오르네
幅巾三四人 [폭건삼사인] 두건을 쓴 서너사람
誰是輞川主 [수시망천주] 누가 망천의 주인인가?
- 袞見而嗛之[곤견이겸지 - 남곤이 이 시를 보고 흡족해 했다.] . . . <省略>
1519년 남곤등이 획책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조광조등이 귀양, 처형되고 2년후인 신사무옥
[辛巳誣獄]때 최수성이 체포되어 조광조와 역적모의하였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으나 후일의
이야기는 최수성이 남곤의 산수화에 붙여 지은 시, 誰是輞川主(누가 망천의 주인인가?) 싯구가
남곤같은 간신은 망천(輞川; 남종화를 완성시킨 왕유의 고향마을)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빗댄
글로 미움을 삿다는 이야기도 많다. [몇년전 소설가 최인호가 지은 유림(儒林)이라는 소설의
1권에 조광조, 김정, 최수성등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읽어보았다. (筆禍,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
- 이전글漢詩이야기(7) .. 강릉출신 박수량 . . . 16.01.19
- 다음글길 위에서 길을 묻다 ⑯ - “꿈을 적다” 16.01.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