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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⑭ - 새해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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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투명하게 하소서.
왜곡이나 거짓이나 흐림이 없게 하시고
무엇이 내 마음을 통과할 때 그대로 지나가게 하소서.
약속을 조심스럽게 하게 하소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기 보다 잠시 미루게 하시고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나 학력이나 출신으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의미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시간을 아끼게 하소서.
하루 해가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 앞에 나타날 내일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하여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과 안정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가족에 대한 사랑,
가정의 기쁨을 늘 가슴에 품게 하시고
이런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자주 허락하소서.
일하는 동안에는 열정이 식지 않게 하시고
열정이 식어 갈 때는 다음 사람에게
일을 넘겨주고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 이 해 인 -
이번 회에는 수녀이자 시인인 이해인 님의 시를 전재합니다. 새해 필자는 이 시의 저 밑바닥 흉내라도 내며 살았으면 합니다. 또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이 시가 뜻하는 것 처럼 살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이토록 깊고도 안정되며 균형과 조화, 아름다움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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