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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㉕ - 꼰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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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생활하는 아들 녀석이 결혼을 서너 달 앞둔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미 처가 될 쪽의 양해를 구해 놨으니 부모님께서는 상견례에 평상복 차림으로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전화였습니다. 필자로서는 개혼(開婚)이고 사돈될 분들과 첫 상면의 자리인데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지 그게 어디 되기나 할 말이냐고 펄쩍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 녀석과 수일을 두고 실갱이를 벌이다가 자식 이기는 애비 없다고 간곡함에 못 이겨 결국은 면바지에 평상시 입던 수트를 잘 세탁해 걸치고 노타이차림의 상견례를 해야 했습니다. 아내 역시 평생에 한두번 있을 일이라 들뜬 마음으로 애써 장만한 정장입기를 포기하고 남편의 의상에 맞춰 마지못한 평상복차림으로 사돈될 분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상견례를 마치고 나니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낮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았고 옷차림처럼 서로 격의 없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체면치레 때문에 정장차림에 갖춰야 할 격식을 앞세웠다면 의례적인 인사에 이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잘 차려진 비싼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상견례를 마쳤을 것입니다. 물론 양가의 진면목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해 1월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결혼풍속도인가 싶다가도 禮와 格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지만 작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겠다는 녀석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고, 몸집도 생각도 어느새 아비를 훌쩍 뛰어넘는 성장을 했구나 하는 대견함과 믿음도 커졌습니다.
본의와 달리 아들 녀석 자랑한 꼴이 되긴 했습니다만 학교시절, 우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뒷전에서 꼰대니 껍데기니 하고 속칭을 한 적이 있었지요. 나는 어느새 우리가 젊은 시절 속칭했던 그 꼰대가 되어있습니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꼰대의 근거 없는 체면치레, 권위의식, 아집, 이제는 내려놔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과 같은 문명 층 속에서 더불어 숲이 되고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검약(儉約)의 생활을 자식을 통해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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