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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당 300만 원짜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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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5-03 19:03 댓글 0건 조회 8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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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당 300만 원짜리 강의


   명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그와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 세상에 공짜 없듯 명강의를 듣는 것도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강사가 자신의 강의에 대한 가치를 개런티로 두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강사료가 비싸면 자연스럽게 명강사가 되는 구조이다. 강의 시장이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라 한다. 이 나라에서는 강의로 밥 벌어 먹는 사람도 많지만 명강사의 강의료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의 경우 모 전직대통령은 강의료가 한 번에 몇 억대를 홋가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가 보았을 때 상식과 한참 어긋남은 물론 그런 세계가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이다. 주최 측과 대통령이 적절한 협상을 통해서 산출된 금액이라 보지만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그런 수준의 강의료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강의에 백미는 역시 선거운동이 아닐까 싶다. 강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선거를 통하여 지도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입담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지 않은 공감대를 불어 넣어 줄 것이다. 물론 나와 뜻을 같이 하는 후보자의 말에 더 공감을 가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한 관심거리가 됨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강의라는 것이 도대체 뭣이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청중의 귀를 사로잡을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말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능력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강의를 잘 해서 돈도 벌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에도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강의야 말로 우리 교육에서 최첨단을 걷는 out put의 결정체라 본다. 세상을 뒤 바꿀 수 도 있는 괴력도 가지고 있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의계의 프리랜서로 뛰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사료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시간단위로 끊어서 강의료가 매겨지는데 시간당 몇 만 원짜리 강사에서부터 어떤 강사는 시간당 몇 천 만 원짜리 강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강사가 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되고 나면 많은 개런티를 두고두고 보장 받을 수 있는 등 괜찮은 직업이라 본다. 강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 딱히 들어갈 비용도 많지 않다. 요즘은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이 발달하여 그것만 보충한다면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끝없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명강사에만 집중적 조명을 받았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아무리 명강사가 많다하여도 그 강의를 들어줄 수 있는 명청중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명강사는 많은데 명청중은 없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리라 본다. 보통 강사가 강의를 나가면 최소한 2명 이상의 청중앞에서 강의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강사는 하나인데 듣는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희소가치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백사장의 모래가 전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다면 그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현재의 모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희소가치가 없는 대상에는 금전적 가치도 부여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강의에는 강사와 청중이 있게 마련이다. 강사는 강의료를 받을 것이고 청중은 강의료를 내야할 것이다. 필자도 내 돈을 내고 강의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물론 나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강의료를 내고 들어본 적은 있다. 돈 내고 듣는 강의는 청중의 절실함이 그대로 배어 있는 관계로 더 신경을 써서 들음을 물론 강의가 신통치 않으면 자연스럽게 본전생각이 나리라 본다. 대체로 청중 개개인이 돈을 지불하고 이루어지는 강의는 훨씬 더 진지하고 격이 높게 이루어진다는 게 정설이다. 강의가 신통치 않아 청중이 열 받으면 강사가 설 땅이 좁아지게 됨으로 강사는 심혈을 기우려 강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의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 영업을 위한 세미나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중이 직접 돈을 내고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회사나 기관에서 돈을 대고 청중은 그냥 들어만 주는 형태의 강의가 주종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의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강의를 들으러 가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강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강의 산업에 백미라 하면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시촌강의가 아닐까 싶다.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더 원활하게 풀기 위해서 그야말로 비싼 강의료를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듣는 경우이다. 이런 강의에는 공짜가 없다. 비싼 강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고 본다. 교양을 쌓기 위한 강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의가 되는 것이다. 더 쉽게 표현한다면 족집게 강의가 되는 것이다. 그 강의를 들으면 듣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월등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모르지만 줄기차게 그런 강사의 강의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았을 때 강사의 약발이 대단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어떤 기자가 그야말로 외국에서 온 명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하여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강의 청취를 신청했다고 한다. 강의 한 타임을 듣기 위하여 적지 않은 돈을 들였는지라 큰 기대를 하고 강의 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돈만큼의 기대는커녕 다른 강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강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신사 체면에 강의 중에 클레임을 걸 수 없는 상황인지라 강의가 끝나고 그 강사에게 강한 어필을 했다고 한다. 유명한 강의를 한다 길래 300만원이나 주고 들었는데 강의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때 그 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오늘 강의는 대단히 성공적인 강의였다. 당신같이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 내 강의는 허무하게 종료되었을 터인데 당신이 항의를 해 줌으로서 오늘 내 강의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항의를 했던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강사에서 강한 항의를 했는데 그 강사는 오히려 자신의 항의에 무한한 감사의 뜻을 보낸 것이다. 강사의 그런 반응을 보고 궁금증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왜 그렀냐고 다시 반문을 한 결과 그 강사는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다고 한다.

 

 “내 강의에서 청중들에게 주지시켜 주고자 했던 내용은 몇 가지가 있었다. 그 몇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실천하면 당신의 인생은 300만 원 이상의 값어치 보다 큰 가치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아까 내가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곰곰이 반추해 보아라. 그리고 그 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면 오늘 내 강의를 들은 당신의 인생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더 이상 반문도 못하고 강사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300만 원짜리 강의인 관계로 유심히 들었던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는지라 그 강사의 요점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천의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는데 자신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

 

  필자는 교직에 있음으로 많은 강의를 들을 기회를 가지고 있다. 연단에서 마이크를 앞세워 거창하게 이루어지는 강의도 있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하나의 강의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명강사라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왜 명강사를 멀리서 찾으려 하는가? 세상에는 내보다 나은 사람이 지천에 깔려 있다고 본다. 단 그것을 보려는 의지가 없을 뿐이다. 명강사의 강의는 귀에 잘 들어올는지 모르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나 나보다 못하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낫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동을 못 느낄 뿐인 것이다. 명강의는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인 것이다. 바로 살아 숨쉬는 강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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