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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out put이 밥 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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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5-01 13:10 댓글 0건 조회 6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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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out put이 밥 먹여준다.


   세계에서 in put교육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나라를 꼽는다면 단연코 우리가 그 대열에 낄 것이다. 공 맹자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이루어졌던 교육의 근간은 오로지 in put교육 밖에 없었던 것이다. in put에 주역은 학생이 아닌 선생님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그 자리를 꿰 찬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유능한 선생이 곧 훌륭한 교육을 일궈내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과거에 논리가 아니라 현재도 통한다는 것이다. 해서 군사부일체라는 말까지 생겨났으며 그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in put교육에 열을 올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방법론 자체가 거의 일방적으로 발달을 해 왔다는 것이다. 공맹자의 논리를 머릿속에 그대로 집어넣는 것이 곧 교육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누가 남의 머리에 공맹자 철학을 더 잘 집어넣는가가 유능한 선생이었고 누가 그것을 더 잘 받아들여 머릿속에 오랫동안 간직하느냐가 훌륭한 학생으로 낙점이 되던 시절이었다.

 

   해방이 되고 험악한 6.25도 지나면서 우리의 교육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자연스럽게도 서구화된 방향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옛날에 서당이나 향교가 서구식의 학교로 변하게 된다. 이러면서 학교는 교육부라는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교육자체가 국가권력으로 자연스럽게 입성하게 된다. 교육을 통하여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영역을 공고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교육이 곧 국가의 미래 권력과 상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입수능과 같은 대학입학 전초단계를 국가에서 독점을 하게 된다.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는 미래 시민을 양성하는데 국가 교육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가장 강하게 국가 교육 권력을 사용했던 정권들이 유신시대와 군사문화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당시에는 행동과 생각이 기득권층과 꼭 맞는 인간들의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더 쉽게 표현한다면 세뇌교육이 횡행하던 시절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아직까지 그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out put교육은 더더욱 설 땅이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조지면 조지는 대로 따라하는 학생이 성실한 학생이고 대접을 받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시키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최고의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수동형 인간도 시대에 따라 필요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단순 노동인력이 많이 필요할 경우 거기에 맞는 인력을 만드는데 그보다 더 좋은 교육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억압과 통제와 획일화 된 교육방법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인물이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변변한 지하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이 정도로 살게 된 것은 순전이 교육 덕분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사는 나라에서 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우리의 교육구조로 노벨상이 나온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말로는 자율성이니 창의성이니 하면서 떠들지만 그 이면에는 옛날 유신시절이나 군사문화의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면 학교에 이단자로 낙인이 찍힐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이다.

 

   학교 자체에서 out put교육이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는 대입수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 중학교 때 아무리 열린 교육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방식의 교육을 한다 하여도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대입수능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초월하여 교육을 한다는 것은 용이하지도 않을 뿐 더러 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가 대입수능에 정교하게 맞추어져 있음으로 out put교육은 애시당초에 물 건너간 방법이 된 것이다.

 

   우리의 대입수능은 오로지 in put을 통하여 머릿속에 집어넣은 후 그것을 그대로 꺼내서 시험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 가감 없이 그대로 답지에 옮겨지는 평가방법에서 어떻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방식이 길러지겠는가? 우리의 대입수능제도가 창의성을 말살하는 대표적인 산물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생각이 유연한 사람도 대입수능에 들어가면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벗어나는 순간 점수가 안 나오는데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대입수능을 거처 대학을 나왔다고 본다. 과거 우리나라 산업이 발전하던 시절에는 기계적으로 배운 인간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왔다고 본다. 기계적이고 틀에 박힌 일들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해 주는 세상에 들어왔다고 본다. 이제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굴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요구되고 있다. 주구장창 외워서 답을 잘 쓰는 인재는 굳이 필요치 않은 시대로 들어왔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 현장은 여전히 in put에 매달려 꼼짝달싹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것은 미래의 인재를 기르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대입수능을 잘 볼 수 있는 기계적 인간을 만드는데 혈안이 돼 있을뿐더러 거기서 좋은 점수를 맞도록 가르치는 교사가 유능함으로 자리매김 되는 형국이다. 대학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수가 가진 지식이나 식견을 학생의 머리에 잘 옮기는 것이 유능한 교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교수는 학생들이 이해를 잘 할 수 있도록 강의를 재미있게 잘 하는 사람이 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 본다. 주입식 교육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학교 교육의 방법도 바꿔야 된다고 본다. 학생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계발하여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기존의 주입식으로는 금세 한계를 느끼리라 본다.

 

   어쨌던 앞날은 out put이 강한 자가 이 사회를 리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 아무리 고상한 지식이나 식견, 경험이 있으면 뭣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사회에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조성작업을 해 주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in put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이  in put만 고집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현재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out put으로 밥을 벌어먹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는데서 부터 새로운 교육은 출발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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