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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청숫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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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연best42 작성일 2018-04-28 23:49 댓글 1건 조회 7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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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두루......

스물둘에 그곳에 들어 갔다가 스물다섯에 나왔으니

햇수로는 4, 3년 동안 어디 가지도 못하고 그곳에만 있었다.

앞산 뒷산이 한뼘인 곳에 강물이 흘렀고 그 강을 따라 좁은 도로가 나 있었다.

아침 아홉시나 돼야 해가 뜨고 저녁 네시만 되면 벌써 어둑어둑해져서

스물둘의 초병은 서글프기 그지 없었다.

 

누구에게 기댈사람도 없고 모든건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고향이 그렇게 포근하고 좋다는걸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은 차라리 견딜만 했다.

내무반 생활은 층층시하 고참들 눈치보기 바빳고

기회만 되면 독립부대로 전출 갈 생각만 했다.

어찌 끝발 좋은 동료는 연대 전령으로 빠지기도 하고

사진사로도 빠져 나가기도 했다. 우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전출이란 꿈

이젠 포기하고 순응하기로 했다,누구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마음이 편했다. 내무반 생활에 재미가 붙고 일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고참 일등병쯤 되어 대민지원도 많이 나갔다.

후임들을 데리고 너댓번 나갔던 것 같다.

 

청숫골이라고 했다, 대민지원을 할 장소가....

중대본부에서 대민지원 나갈사람 신청을 받았다.

바로 신청을 했다, 마음이 맞는 후임 두명을 꼬셔서....

청숫골은 도보로 이동하기엔 먼거리라 수송부에서 차량지원을 해줬다.

 

가을철이라 벼 마댕이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와롱기계를 돌려 벼 탈곡작업을 하는것이었다.

한사람은 볏단을 풀어 가지런히 한줌씩 쥐기좋게 펼쳐놓고

두사람은 와롱기계 발판을 힘차게 굴려 탈곡작업을 하는 것이다.

 

인천이 고향인 이 일병은 처음 하는 일이었던지 많이 헷갈려 하고 어려워 했다.

그것도 잠시, 평소 낙관적이던 이 일병은 금새 우리들 일에 따라 붙었다.

양평이 고향인 박일병은 그런일을 많이 했던지 탈곡하는데 완벽했다.

나락이 볏짚에 붙어 나가는 일이 없었다.

주인 영감은 희색이 만면했다, 어쩌다 저런 일꾼을 만났나 싶었던 모양이다.

 

점심을 먹으라고 밥이 나왔다.

흰 쌀밥이었다.김치도 포기김치를 반만 썰어 내왔다.

고등어도 구워서 내왔다. 많이 먹으라고.

 

풀끼없는 잡곡밥에 멀건 배추국,

어쩌다 닭고기가 나와도 먹어볼 것 없이 입만 다시던 부대 밥 하곤 질이 달랐다.

숟갈에 고봉으로 올린 밥은 입에서 씹을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먹고 또 먹고 밥그릇을 다 비우니 양푼으로 가득한 밥을 또 내민다.

 

예쁜 처녀였다,양푼을 들고온 사람이.

노부부만 있는줄 알았더니 딸래미도 있었구나....

우리보다 아래로 보였다. 열 여덟은 됐으리라 어림짐작했다.

얼굴이 복슬복슬해서 터질 것 같다.

눈매가 예뻣다,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느려졌다

힐끔 거리느라 김치도 흘렸다.

이름이 혜숙인 모양이다, 주인영감이 딸래미 이름을 부르는걸 보니....

 

아침 아홉시부터 쉬지도 않고 네시간을 탈곡작업을 했으니 그 양도 만만치 않다

주인내외는 고마웠던지 막걸리 단지를 내왔다.

일을 많이 했으니 막걸리 한잔 하고 쉬었다가 부대복귀하라신다.

부대근처 주민들은 군대용어에 익숙한 것 같다.

그냥 부대에 돌아가라가 아니고 부대복귀라는 전문용어를 쓰니 말이다.

주인 영감이 술을 한잔 하시며 농인지 진담인지 한 말씀 하신다.

~ 우리 딸래미 데리고 갈 사람 여기 있네~ 허허

그러며 나를 보는게 아닌가?

일 잘하는 양평의 박일병은 제껴두고 일도 못하는 나를 점 찍을게 뭐야?

얼굴이 후끈 달아 올랐다.그래도 좋기만 했다.

 

부엌에서 일하던 혜숙이도 제 아버지를 따라 나를 힐끔 보는게 느껴졌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자기도 좋다는 표시일까?

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던 나로서는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부엌으로 향한 내눈엔 볼이 발그레해진 혜숙이가 더 예뻐 보였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났다.

씩씩한 군인정신으로 ! 알겠습니다그랬으면 될 일을 그런 용기도 없었던지...

마음만 콩닥이다가 부대로 복귀하고 말았다.

밤새 뒤척이다가 잠도 옳케 못잤는데 아침이 밝았다.

대민지원병 집합주번하사의 목소리가 들려올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대민지원 신청받는 일은 없었다.

혜숙이의 해맑게 웃는 모습만 눈에 어른거렸다.

 

정기휴가날짜가 왔다

첩첩 산중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일행과 함께 시내까지 30리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시내까지 가는 도로는 야트막한 고개였고 청숫골은 올라가는 고개 오른편에 있었다.

청숫골 입구에서 잠시 쉬었다. 혼자.

다른 사람들은 속사정을 모르면서 빨리가자고 독촉이다.

지난 가을에 잠시 봤던 혜숙이는 잘 있을까?

갑자기 지금 당장 가고 싶었다, 혜숙이네 집에.

웃는 모습이 유난히 예쁘던 혜숙이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휴가병 일행은 빨리 오지 않는다고 성화다.

뒷일 보다 미처 마치지 못한 듯 어기적거리며 일행을 따라 붙었다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동안에 격심한 훈련의 연속으로 혜숙이는 잊어버렸고

이태 후엔 제대를 해서 청숫골은 내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줄 알았다

40년이나 지난 어느날, 옛날 근무했던 부대근처 마을의 지도를 보게 되었고

(어느때부턴가 지도검색에 취미를 가졌다)

돈두루 마을을 확대해서 보니 청숫골이 보이지 않는가?

아련하게만 생각되던 청수골, 청수동 .....

그 지명이 맞는지도 불명확한데 눈앞에 보이는 그 글자를 보곤

확실하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도로옆 골짜기로 들어가는 샛길 .... 그 안으로 들어서면 청수동 청숫골(淸水)

 

갑자기 40년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고갯마루를 오르다가 뒤돌아보던 일이 어젯일인양 이어져 생각이 난다

혜숙이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꽃이었다, 복사꽃 ..발그스름하게 물든 예쁜 꽃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그 복사꽃이

거기 그대로 있을것만 같았다.

복사꽃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차를 몰고 세시간여 달려 그곳에 닿았다.

청수동이 이곳 같기도 하고 저곳 같기도 했다.

복사꽃이 거기 그대로 있을리도 없지만

집터도 공원화 되어 없어진 것 같다.

혜숙이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그만 돌아가게 하는 것 같다.

 

지금은 어느사람의 부인으로

어느 아이의 할머니로

60중반이 되었을 복사꽃은

영원히 복사꽃이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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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단편소설같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좀더 일찍 찾아가 보았더라면 . . . 글의 전개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