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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앨범사진을 도록책으로 편찬하면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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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욱빈 작성일 2020-06-15 08:51 댓글 0건 조회 7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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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어 계속-

나도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몸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자태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체구는 뚱뚱한 모습이 아니라 호리 호리하셨다. 손도 여느 농부의 손처럼 손가락 마디가 굵고, 거칠어진 모습이 아니라 사무직에 종사하신 분들의 손 같은 느낌이다. 나의 체구도 그렇지만, 우리 형제들의 체구도 아버지의 체구와 비슷해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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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판을 잘 놓으셨던 아버지!

외출하실 때에는 항상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하셨던 아버지!

평상복 내지는 캐쥬얼한 옷 보다 정장 차림이 더 잘 어울리셨던 아버지!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주판을 좀 놓을 줄 아는 것도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고, 정장 차림이 다른 옷 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도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모임에는 정장 차림으로 간다. 너의 엄마는 편안하게 캐쥬얼한 옷을 입으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옷이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아 싫다.

 

몸의 구조가 소위 말하는 옷거리가 좋지 않아 그런지 입으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사오지도 말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외출용 캐쥬얼 복은 등산복을 빼고는 춘추용, 겨울용 각 하나 정도 밖에 없다.

 

어쩌다 같이 따라간 시장 옷가게에 안들어 갈 수도 없고 하여 들어가면 엄마는 이 옷 저 옷 입어 보라고 채근한다. 결국은 사지 않고 그냥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아버지께서는 술을 즐겨 하셨고, 남과 어울려 노시는 것을 좋아 하셨다. 명절이면 우리 집 마당에서 농악 단복을 입은 농악대원들은 태평소를 불며, 꽹과리를 치는 상쇠를 정점으로 징, 장구, 북을 치며 흥을 돋운다. 이어 소고를 치며 상모 돌리는 분들이 질서 정연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본인의 실력을 보여준다. 치마 저고리에 꼬깔 모자를 쓰고 예쁘게 춤을 추며 노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그 때는 그 소리가 참 싫었는데 어느 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농악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 쪽을 향하는 발걸음!......

어느 듯 나는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 농악놀이에 빠져 있더구나.

 

서울에서 강릉단오제 구경갔다 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농악 경연대회이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 옛날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놀이문화, 부모님의 모습과 당시 농악대원들의 얼굴과 몸짓이 또렸하게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때문이다.

 

경연대회에 나오는 팀 구성원들을 잘 살펴보면 꽹과리, 장구, 상모 등 파트마다 나이 많은 분이 한명씩 있다. 그 분들이 그 파트에서 가르켜주는 전수자인 것이다. 비록 몸은 늙어 원하는대로 잘 움직이지는 아니하나 자세히 관찰하면 한 동작 한 동작이 오랜기간 쌓아온 숙련된 몸놀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었을 때에는 지칠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을 분인데............마음이 아프구나.

 

비록 가난은 하였지만 인심이 좋았고, 기계화가 되지 않은 시절이라 주민들이 함께 일을 하여야 하기에 이웃간 허물없이 지냈던 시절이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집에 도착하니 동네 주민이 의뢰한 만장! 주1)

 

아버지께서는 붓에 먹을 적신 뒤 명주로 된 만장대에 일필휘지 하셨다.

지금와 기억해 보면 당시 아버지는 행서 내지는 초서로 글을 쓰셨다.

다 쓰시고 난 뒤에는 의뢰인에게 해석을 해주셨다. 구구 절절하게 해석 해 주시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고, 큰 감동으로 남았다.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가 벼루에 먹을 갈고 있으면 동네에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주민들은 만장을 써주는 댓가로 아버지에게 봉초 담배 한 보루를 주고 가셨다.

 

나도 어느덧 서툰 붓을 잡은 지 40여년이 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었고, “강원서예대전 초대작가가 되었으니 이 또한 아버지를 닮았구나.

 

아들아!

어느 듯 나의 이런 모습은........ 아버지의 정신과 함께 아버지를 닮아 있어 내 아버지의 자리에 내가 서 있구나!’.......

 

라. 너희들도 그 자리에 선다 

     다음편에 게재

 

 

주1) 옛날에는 동네 누군가 사망하면 망자를 추모 내지는 가족의 곁을 떠나는 슬픔을 한시로 명주 비단에 쓴 것을 만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만장은 일종의 부조형태로 유족에게 전해 준다. 유족은 그 만장을 읽을 수 있도록 전시하여 유식한 문상객들이 한시를 읽고 해석하곤 하였는데, 만장이 많고 적음에 따라 망자 내지는 유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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