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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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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10-07 17:41 댓글 0건 조회 6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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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산 꽤

 

 

지나간 이야기를 자꾸 씨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다 지나 갔는 걸......

나이를 먹을수록 앞으로 다가올 이야기보다 과거에 보리알 먹던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많이 나옴을 직감할 수 있다.

흘러간 시간으로 새역사를 쓸 수 없듯이 과거를 들추어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는 것은 용이치 않은 문제라 본다.

 

 

렇지만 어쩌겠는가.

인간도 자연과 함께 흐르는 관계로 흘러간 다음에 쓸 이야기는 과거사 밖에 

더 있겠는가 싶다.

좀 긍정적으로 포장한다면 과거를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좀 덜 겪으면서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기회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릉시내에서 남쪽 방향의 벌판 중심에 학산이라는 곳이 있다.

그 지명의 한자를 보면 鶴山(학산)으로 표기가 된다.

글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학(두루미)가 많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은 거기서 학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학산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던 학도 다 사라져버렸다.

거기에 편승하여 사라져 버린 것이 또 있었으니 다름 아닌 꽤라는 과일나무이다.

 

 

학산 꽤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곳에 명물이었다.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은 다 심었고, 공터에도 그 나무가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많던 꽤나무가 어느 날인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물론 새로운 과수 품목이나 품종이 물밀 듯 들어오면서 꽤라는 존재가 한 방에

 맛이 가 버렸으리라 본다.

 

 

꽤는 자두도 살구도 복숭아도 아니면서 그와 비스무레 한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일단 과일 표면에 털이 없다.

크기는 아주 작은 자두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다 핵과류이면서 엄청 신맛이 강하게 난다.

그것만 봤을 때엔 자두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토속 과일이다 보니 병충해에도 상당히 강한 과수로 알고 있다.

옛날에 농약도 변변히 없던 시절을 꿋꿋이 견뎌온 과수라 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오리라 본다.

 

 

이 과일은 여름 방학 무렵이면 익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족하던 때라면 그 당시에 꽤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먹거리가 너무나 부족했을 당시에 꽤는 여름날 간식거리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꽤라는 과실의 특징은 다 익어도 엄청 신맛이 강하게 난다.

색깔은 빨간색으로 익다가 더 익으면 진빨강, 보라색으로 살짝 넘어간다.

그때가 되면 그렇게 시던 과일도 달콤하게 변하면서 육질도 말랑말랑하게 된다.

과일에서 먹어보지 않아도 그냥 콧구멍을 후빌 정도로 강하게 발산한다.

몇 개만 따 놓아도 그 근처에 향기가 밸 정돌 강하다.

과일 중에 그렇게 진하게 향기를 내 뿜는 품목은 아직까지 본 적 없을 정도이다.

 

 

번식은 별로 어렵지 않다.

꽤 나무가 있는 밑둥이에서 흡지 비슷하게 새 싹이 올라올 때 떼어서 심으면 된다.

요즘 나오는 과일처럼 대목에 접목을 하거나 아니면 삽목이나 취목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과실나무가 확산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무의 크기도 한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되면 멈추는 준 관목이라 

보면 될 것이다.

살구나무나 자두, 복숭아처럼 자연 그대로 놔두면 교목이 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집 동구 밖에 몇 포기 심어 놓으면 관상용도 되고 여름날엔 과실도 

따 먹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당시에 이런 일화도 있었다.

학산에서 꽤 나무가 가장 많았던 마리아라는 집이 있었다.

이분은 제가 국민 학교를 다닐 때 나이가 많았던 분으로 기억한다.

꽤 나무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꽤가 익을 때 그 집 꽤가 동네 아이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었다.

마리아라는 분이 지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성질이 만만찮았던 영감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살금살금 들어가 그 집 꽤를 훔쳐 따 먹다가 걸리면 혼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 집 꽤를 훔쳐 먹으로 간 아이들도 그 영감님의 성깔을 알고 갔기에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들어가게 된다.

그런 것이 반복되다보니 아이들 입장에서 그 영감님이 보통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하게 된 것이다.

그게 한두 해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그 영감님 소유의 꽤 밭은 

점점 더 아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즘 젊은 시대를 살아가는 학산 사람들에게 꽤 이야기를 하면 잘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태반은 될 것이다.

노년기에 접어 든 토박이나 꽤에 대해서 인식을 할 정도일 것이다.

그걸 반전시키기 위하여 누군가가 구정초등학교에서 테라로사 커피숍까지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죄다 자두 가로수를 심었다.

기왕이면 꽤 나무를 심어 놓았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어갔다.

자두나무를 심고자 계획한 사람 입장에서는 시대가 변했으니 꽤 비스름한 

자두를 심어 놓으면 옛날 꽤 맛이 나겠거니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자두를 가로수처럼 심어 놓고 나니까 자두가 열릴 때 많은 사람의 

견물생심을 불러오게 했다는 것이다.

자두가 익을 무렵이 되면 그걸 전문으로 따 가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차를 세워놓고 가로수에 열린 자두를 따가게 되는 것이다.

옛날 동구밖에 심어 놓은 꽤를 몰래 따 먹듯 가로에 심겨진 자두 열매를 따 가는

 것이다.

물론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릴 수 도 없는 문제라 본다.

먼저 따 먹는 놈이 임자가 된 셈이 되어 버렸다.

 

 

학산에 꽤 대신 심어 놓은 자두는 과실나무이다.

한 종류가 다량으로 심겨지면 병충해가 자연스럽게 극성을 부리게끔 되었다.

자두가 익을 무렵에 그곳을 지나다보면 나무마다 주렁주렁 과실이 매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는 그 자두가 하나같이 심식충의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가로에 열린 자두를 따서 깨물어 보면 그 안에 심식충이 발견되곤 한다.

물론 학산 꽤도 그런 현상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꽤 대신 심어 놓았던 자두가 세월이 지나면서 자동차 주행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일전에 리프트가 달린 차량들이 동원되어 자두나무 가로수 아랫가지와 윗가지를

 죄다 잘라내 버렸다.

심어 놓고 지금까지 전정한 번 제대로 안 했던 것을 한 방에 싹 정리한 것이다.

과일이 달릴 것을 전제로 전정한 것이 아니라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전정을

 해 버린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내년엔 자두가 많이 안 달릴 것이다.

그리고 달렸다하더라도 결실부가 워낙 높이 올라가 있어서 그걸 함부로 따다보면

 낙상 등 안전사고가 유발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잘못하다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라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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