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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得來(김득래, 20회) 선배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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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양 작성일 2017-09-06 22:48 댓글 0건 조회 2,2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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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래 선배님(20회, 1931년생) 제20대 강원도농촌진흥원장 재임시의 사진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서 학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왕고개라 한다.
      그 왕고개 도로 좌우로 직선거리 500m이내에 기와집 고택(古宅)이 3채가 있었는데
      왕고개를 넘으면서 좌측의 기와집이 故 金得來(김득래, 20회) 선배님 생가이다.
      약 200m 남측 도로변에 강릉시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된 정주교(정의윤)씨 가옥,
      그 남쪽 약 200m이내에 趙淳(조순, 경제학자, 경제부총리, 민선 서울시장등)씨 가옥,
      이렇게 기와집이 3채가 있었는데, 김득래씨 가옥은 양옥집으로 개축되었다 한다.

      김득래선배님은 20회로 졸업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를 졸업하시고
      1982년 서울시농촌지도소장으로 7년간 재직중 1989년 10월, 강원도농촌진흥원장에
      부임하시어 1992년에 정년퇴임하였다. 

      과거 농업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농사개량과 농촌 청년들을 지도하는 4-H활동지도등
      도의 농촌진흥원과 그 하부조직인 시군 농촌지도소의 임무가 많았다.
      김득래선배님이 강원도농촌진흥원장시 나는 도청지방과에서 도,시군의 기구와 정원을
      관리하는 조직관리부서의 부책임자로 있었는데, 김득래선배님이 부르시기에 찾아뵈니
      일선 농촌지도소의 장비와 인력지원을 부탁하신다.  당시 농촌지도소 지도사들이 농촌
      지역을 방문할때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지역에서 밤늦게 귀가하다가
      젊은 나이에 오트바이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명분이 충분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장비와 인력증원 계획을 만들어 지휘부의 결재를 받고 예산부서의
      예산지원을 받아 시.군농촌지도소마다 반트럭 자동차 한 대와 운전인력을 증원하니
      김득래선배님이 매우 기뻐하셨다.  당시 농촌지도업무를 담당하는 간부직 공무원은
      국가직으로 중앙에서 발령을 내기 때문에 도지사의 간섭이 적었다.

      김득래선배님은 중앙(농촌진흥청)에서도 능력을 인정하지만 너무 꼿꼿하신 성품이
      불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래야 하는 거지. 게(해,蟹)는 바닷속
      龍王(용왕)님 앞에서도 옆으로 간다니 그 꼿꼿함을 버리면 안되는 것이었으리.

      20회 선배님의 옛날 이야기를 하나 적습니다.
      지금 학산 왕고개는 고속전철 지나가는 굉음이 대단하다니 開闢(개벽)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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