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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코 앞에 통일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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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9-05-16 10:30 댓글 1건 조회 9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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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코 앞에 통일전망대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조선시대 문인묵객들이 아주 즐겨 찾았던 곳 중에 하나가 금강산이었다고 한다.

한반도에 허구 많은 산하를 뒤로 하고 왜 금강산만 찾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오리라 본다.

금강산이 아니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양식 있는 선비들이 금강산을 오갔던 흔적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 시켜 줄 훌륭한 사료관이 있다.

다름 아닌 경포대 근처에 있는 선교장이다.

여기에 가면 옛날에 강릉을 거쳐서 금강산으로 들락날락했던 선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혹시 식객이라고 들어 봤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여행을 하는데 돈을 싸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던 만큼 선비들은 지방 유지 급이 있는 집에 들러 밥과 함께 어느 정도 노잣돈을 받아썼던 문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대가로 선비들의 재능을 기부해 놓고 간 흔적들이 선교장에 잘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문인묵객이 사랑했던 금강산에 무시무시한 철망이 가로막히면서 우리는 70여년의 단절 시대를 겪어 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과 북이 평화와 민족공영의 뜻을 담아

어렵게 어렵게 금강산을 볼 수 있는 다리를 연결시켜 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일구어낸 남북 간의 합작품이 채 영글기도 전에 언늠(?)의 한 방에 발길질에 한 순간 셔터가 내려져 버렸다.

만들기는 어렵지만 부숴내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확연하에 느끼게 한 대목이라 본다.

 

이로 인해서 70여 년간 남북 간에 동토처럼 얼었던 땅이 풀리는 가 싶었는데 이내 전 보다 더 얼어버린 형국으로 변해버렸다.

그깟 금강산 안 보면 못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금강산 관광료가 북한에 미사일 만드는 밑돈으로 쓰인다면서 거품을 물고 반대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한다면 남한 사람들이 물밀 듯 북한의 금강산 관광으로 들어가면서 남북 간이 화해가 된다면 북한 또한 굳이 미사일을 쏠 이유도 크게  줄어 들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시금석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는데 그 좋은 계기를 허무하게 날린 사람들은 자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시에 금강산 관광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남북한이 지금처럼 이렇게 험악한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적대시 하면 할수록 자기 방어를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법칙인 것이다.

서로가 화합과 평화를 외면하고 적대와 질시, 반목과 전쟁을 하자고 덤벼드는 판에서 안정적인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요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도 가 볼 수 없다면 더 애가 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못가 볼 곳이 거의 없는 세상에 유독 코앞에 있는 북한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반성을 많이 해야 할 부분이라 본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 가다보면 어려운 것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통일전망대는 과거에 갔을 때 보다 훨씬 깔끔하게 단장을 해 놓고 많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쪽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널찍한 도로와 철도가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도로와 철도가 뚫려있으면 뭣하겠는가?

거기에는 다녀야 할 차량과 기차는 보이지 않고 유령만 득실거리는 곳으로 변해 버린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먼발치에 금강산과 해금강,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서린 호수 등을 보면서 같은 한반도 땅인데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점점 깊어간다.

팔만 벋으면 손에 잡힐 듯 한 우리 산하를 맘대로 다닐 수 없는 이 참담한 심정은 홍길동 시절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 뭣이 다를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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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님의 댓글

이상경 작성일

조선생님! 멋진 사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1975년 9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첫 배치 받은 곳이 바로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이었습니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중앙지점 우리측에 가까운 곳 해변의 작은 돌출된 섬이 송도라고 하는데 이곳은 저의 보급창고였습니다. 카~아~! 수색 매복을 갔다가 철수하면서 전복과 홍합으로 배를 채웠던 곳인데... 그리고 통일전망대의 운동장과 급수장은 수색대원들과 함께 당시 제가 등짐으로 모래와 자갈을 옮겨 만든 너무도 추억어린 곳이지요.